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일과 가정의 양립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일과 가정의 양립

입력
2010.01.21 23:10
0 0

일과 가정생활을 다 잘하는 '슈퍼 우먼'은 극히 소수일 수밖에 없다. 잘한다는 기준이야 개인적으로 다를 수 있지만, 어차피 주어진 시공간의 제약을 넘나들면서 일터와 가정 양쪽을 자유로이 오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가정생활에 충실하기 어렵고, 가정 일에 몰두하다 보면 일에서 인정받기 어려워지는 것이 상식이다.

사회적 지원ㆍ 제도 개선을

결국 적당한 균형이 중요하다. 아무리 일을 잘할 수 있어도 어느 정도에서 절제해야 하고, 아무리 아이들에게 직접 다 해주고 싶어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렇게 어려운 곡예를 해야 하니 여성, 특히 고학력 여성으로 생계형 가장이 아닌 경우에는 일을 갖기를 꺼리고 아이 둘 이상 낳는 것을 일찍이 포기한다. 그래서 출산율도 세계 최저수준이다.

출산 및 육아휴가와 휴직제도의 확대, 보육시설과 지원금의 확충, 여성친화적인 일자리 개발, 남녀고용차별금지 등이 그 동안 주요정책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런데 일과 가정의 양립 측면에서 무엇인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로 여성들에 대한 지원 및 보호 측면에서 많은 정책 투입 노력이 있었지만 산출물은 별로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동네 아파트 아줌마들은 아이들 학원으로 할인마트로 돌아다니기 바쁘다. 왜 그만큼 배워서 일을 찾지 않는지 물어보기조차 민망한 것이 현실이다. 노동시장과 가정에서 나오는 온갖 복잡한 이유들이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여러 가지 묘수가 있을 수 있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간과 돈을 통제하는 것이다. 만약 시간당 받는 임금이 높다면 적당하게 일하고 남은 시간은 아이들 키우는데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유감스럽게 그게 안 된다. 장시간 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 근로자층이 많고 고학력, 고임금 근로자라 하더라도 아쉽지만 자기 마음대로 단시간 근로를 선택하도록 배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임금 근로자 가구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더라도 집안일을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수당과 서비스의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고학력, 고임금 가구에게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도록 근로와 근무제도의 유연화가 필요하다. 늦게 나가든지 일찍 들어오든지, 아니면 집에서 일하든지 적게 일하든지 이런 것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소득지원을 통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촉진하는 것보다 근로 및 근무제도의 유연화가 더 어렵다. 일정한 규제와 인센티브를 통해 유연한 근로가 확산되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지만 그 이전에 연공서열식 조직 운영원리와 집단적인 생산과 업무방식이 주종인 우리의 산업과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남자들도 절대시간의 노동에서 벗어나 집에 있을 수 있어야 여자들이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직무와 성과 중심이 아니기에 누구나 같은 시간을 노동에 투입해야 일정한 보상이 보장되고 투입시간 기준이다 보니 보상을 차별화하기 어렵다. 집단적 평등주의 문화가 때로는 정의롭지만 모두가 일터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과 경쟁은 피곤한 측면도 있지만 개인을 시간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역할도 한다.

창의력과 성과 중심 평가로

한층 더 근본적인 해답은 우리 기업과 산업을 빨리 지식중심, 고부가가치 지향, 창의 존중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바꾸면 회사도 가정도 모두 풍족해지는 윈-윈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일하는 방식의 자유를 주되 결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책임을 묻는 조직문화, 나이가 들어도 근력에 의한 투입노동으로 평가 받지 않고 창의력과 성과에 의해 평가 받는다면 일과 가정이 양립되면서 중고령 인력이 무조건 천대받지 않을 수 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