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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모로코, 탕헤르-여기 북아프리카 땅… 조선궁녀 리심은 무얼 꿈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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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모로코, 탕헤르-여기 북아프리카 땅… 조선궁녀 리심은 무얼 꿈꿨을까

입력
2010.01.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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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찬란한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을 한참을 달려 지브롤터 해협으로 달려갔다.

지브롤터가 가까워질 무렵 해무 낮게 깔린 바다 건너 웅장한 땅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프리카다. 지척의 거리에 유럽과 검은 대륙이 마주하고 있다.

타리파(Tarifa) 항에서 배에 올랐다. 그리고 40여분. 이웃 섬에 마실 갈 시간에 배는 다른 대륙의 항구에 도착했다. 모로코의 탕헤르(Tanier)다.

뉘엿이 지던 햇덩이가 고도(古都)의 낮은 스카이라인에 걸려 황금빛을 토해냈다. 처음 마주한 북아프리카는 그렇게 황홀한 첫 인사로 맞아줬다.

이슬람 전통의상과 구릿빛 베르베르인들이 붐비는 항구에선 북아프리카의 냄새가 폴폴 풍겼다. 시가와 향신료 등이 뒤섞인 것 같은 약산 싸한 향. 고물차가 뿜어내는 매연이 더해져 코가 매캐했다.

탕헤르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다. 예부터 전략상 요충지로 인정받아온 곳이다. 아랍과 유럽의 제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번갈아 차지했던 오래된 도시다.

20세기 초 열강의 표적이었던 탕헤르는 누구도 독차지할 수 없도록 규정된 인터내셔널 존의 국제도시가 됐다. 당시 탕헤르를 나누어 가진 나라는 프랑스 스페인 영국 포르투갈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미국 등이다.

국제도시 탕헤르에 사는 사람들은 각기 자기 나라 외교공관의 통제만 받으면 됐다. 각 나라들은 자체 통화, 은행, 우체국을 운영했다. 사실상 무정부의 도시였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모로코에 1957년 반환될 때까지 탕헤르는 세계에서 가장 번화하고 이색적인 도시 문화를 꽃피웠다.

모로코와 아프리카, 유럽이 뒤섞인 이곳은 금지된 것은 하나도 없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땅이었다. 자연과 도시가 주는 예술적 영감과 싼 마약을 찾아 전세계에서 문인 예술가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탕헤르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와 연관이 있다. 헤라클레스는 지상낙원인 헤스페리데스 정원으로 사과를 따러 가다 정원 인근에서 가이아의 아들인 거인 안타이오스와 레슬링을 겨뤘다.

헤라클레스는 거인을 공중에서 목졸라 죽이고 그의 아내 팅게(Tinge)와 동침해서는 아들 소팍스를 낳았다. 탕헤르의 이름은 그 여인의 이름에서 나왔다.

탕헤르는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무대로도 등장했다. 탕헤르 구도심의 좁은 골목길에서 벌어진 다이내믹한 추격신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도 탕헤르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보물을 찾아 떠난 소년은 여행 첫날 탕헤르에서 가진 돈을 몽땅 도둑맞는다.

그리곤 "스스로를 도둑에게 당한 가련한 여행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보물을 찾아 원정을 떠난 모험가로 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탕헤르는 또 조선 여인으로 최초로 유럽과 아프리카 땅을 밟은 궁녀출신'리심'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1894년 리심은 모로코 공사관 서기관에 임명된 남편 빅토르를 따라 탕헤르를 찾는다.

당시 탕헤르는 아프리카 식민지 건설의 교두보로 제국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연약한 조선 여인은 탕헤르에서 열강에 짓밟히고 있는 한양을 오버랩 했을 것이다.

항구에서 벗어나 숙소로 가는 길은 차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전통 이슬람 의상을 걸친 여인도 보였고 스키니진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은 여인도 있었다. 멋쟁이 신세대 여인의 걸음은 당당했다.

'게으름뱅이 테라스'란 별칭의 작은 광장엔 가족 나들이 객이 많이 나왔다. 이곳엔 침략을 경고하는 커다란 대포 3대가 바다를 조준하고 있다. 대포는 너무 오랜 기간 외세에 시달렸음을 거꾸로 말해주고 있다.

포신에 아이를 올린 아주머니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고개를 돌린다. 아랍의 여인들, 특히 결혼한 이들은 다른 남성에게 사진 찍히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남편이 있었으면 괜한 싸움이 붙었을 일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고도의 예스러움을 좇아 카스바(Kasbah)에 올랐다. 구시가지 메디나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옛 성곽이다. 카스바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옛 성곽, 요새를 일컫는 말이다. 탕헤르의 카스바에는 우리 유행가 속 카스바의 여인은 없었다.

성곽 안에는 집들로 빼곡했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들. 자세한 지도가 있다 해도 길을 잃어버리기 딱 좋은 미로다. 탕헤르의 가이드는 이리저리 골목을 헤집다가 신도심을 향해 시야가 뚫리는 곳에서 멈춰선, 건너편 사원을 가리켰다.

이슬람 모스크와 스페인 성당이 나란히 붙어 서있었다. 그는 "모스크 바로 옆에 성당이 있는 건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라며 모로코가 얼마나 타종교에 관대한가를 설명했다.

카스바와 메디나 안의 구시가지는 지금은 가난한 마을이지만 57년 모로코에 넘겨지기 전까지는 떵떵거리던 부촌이었다. 옛 유대?지구 옆 쁘띠소코(Petit Soccoㆍ작은 시장)에선 지금도 소규모의 장이 열렸다.

달랑 4갑을 들고나온 담배 파는 아저씨는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았고 감자와 채소를 사러 나온 할머니들은 맘껏 수다를 떨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과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대문과 창문들. 마을은 한없이 정겨웠다. 골목을 마주한 집들은 창문을 열면 서로 악수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서로를 가깝게 보듬어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벽으로 막힌 아파트와 달리 숨길이 트인 골목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골목을 돌다 카스바 성곽 밖으로 나섰다. 시원한 바다가 열렸다. 물 위로 낮게 해무가 깔렸다. 해무 저편의 뭍자락은 스페인, 유럽 땅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뒤섞이는 공간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성벽 옆에 선 한 모로코인이 오랫동안 바다 건너를 응시한다. 그 또한 유럽을 꿈꾸는 것일까. 다 허물어져가는 성벽에 기대 스러진 시간과 역사를 떠올려본다. 조선 궁녀 리심도 이 자리에서 머나먼 바다를 응시했을까?

탕헤르(모로코)=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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