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정부가 처음으로 개최한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발표된 많은 정책들 중 유독'대학 구조조정'이라는 것에 눈길이 간다. 학력별 취업난 해소를 위해 경쟁력 없는 대학을 구조조정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대졸자의 실업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인적 수요에 비해 대졸자 수가 너무 많은데다, 이들의 자질이 산업계가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구조조정 방안에는 곧 초ㆍ중등 및 대학 단계에서의 교육 과정이나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 진로ㆍ직업교육을 크게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대학 정원을 대폭 줄이는 정책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1년 졸업정원제를 이유로 대학입학정원을 대폭 늘린 데 이어, 김대중 정부의 이해찬 교육부 장관 시절 아예 고교 졸업자 수보다 대학입학 정원이 더 많은 상황을 조성했다. 그 바람에 선호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4년제 대학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정도로 문호가 개방되어있다. 당연히 대학의 양극화는 심화했다. 지방대학은 학생이 모자라 머릿수를 채우느라 허덕이고, 서울지역의 대학은 입학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소리가 나온다.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고 학력 거품만 커진 셈이다. 문제는 대학의 수준에 따라 학생의 질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학력 거품'이 일어나면서 대학 문패를 단 졸업자들은 허름한 중소기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높은 청년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학벌이 지상목표가 되어버린 우리의 독특한 교육문화로 인해 개선이 전혀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왔다.
한국일보가 올해 신년특집의 일환으로 해외로 발품을 팔아 취재해 보도하고 있는'기능 선진국을 가다'라는 시리즈를 보면 스위스나 이탈리아 등 기능 선진국들의 교육제도가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스위스의 경우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교사가 전적으로 학생이 직업훈련학교를 가느냐, 인문계 고교를 가느냐를 결정한다. 부모들도 이에 불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의무교육 과정인 9년간의 초ㆍ중학교를 마친 15세가 되면 인문계 고교를 진학하는 학생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직업훈련학교로 간다. 우리는 대학진학률이 84%로 스위스의 4배를 넘는다. 이탈리아 역시 대학 진학률은 50%에도 못 미치는 반면,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고교과정이 매우 발달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스위스나 이탈리아에서는 사교육비나 청년실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처럼 학력 거품이 만연할 경우 지금 같은 경기 침체기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행한 'SERI 전망 2010'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학력자 공급은 증가했으나 이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일자리는 오히려 줄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고학력 구직자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데 우리 풍토에서는 쉽지 않다. 대학교육에 대한 투입비용은 많으나 취업률이 낮다 보니 투입대비 산출은 미미해 '고등교육의 수익률'은 크게 떨어지는 구조다. 하지만 자발적인 고등교육 포기는 나올 리 없다. 정부가 나서 구조조정을 하는 방법밖에는 대안이 없다. 스위스 등의 사례를 참고, 장기적인 대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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