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오래 묵히면 묵은지가 된다. 아이돌을 10년 묵히면 쓸 만한 예능 기대주가 된다. 요즘 오락 프로그램은 화려한 시절을 다 보낸 아이돌의 예능 생존기다.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서 SES의 슈는 아이돌의 연애 비법을 털어놨다. 그룹 NRG의 멤버 노유민은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에 나와 예전보다 매우 후덕해진 얼굴로 자신의 데뷔곡을 불렀다.
예능 프로그램은 아이돌의 화려했던 과거를 유머의 소재로 삼고, 대신 아이돌은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한다. 지난 19일 '강심장'이 간미연, 심은진, 노유민 등 옛 아이돌을 모아 '10년차 아이돌 특집'을 한 것은 왕년의 아이돌 스타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입성하는 전조다. 1, 2년 전부터 MBC 예능 프로그램 '세바퀴' 등에 이른바 '아줌마 토크'가 등장해 중장년층을 겨냥한 토크쇼 붐을 일으켰듯 10년차 아이돌은 그들의 팬인 현재의 20대 후반~40대 초반을 예능 프로그램에 끌어들인다.
흘러간 아이돌들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오자마자 뚜렷한 활약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예능 프로그램, 더 나아가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허리 역할을 한다. god의 김태우는 KBS 2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에서 소녀시대나 카라 같은 여자 아이돌 그룹의 오빠 노릇을 한다. 같은 그룹의 데니안은 '강심장'에서 웃음을 선사하더니 KBS '추노'에 출연하고, 케이블TV MBC에브리원의 '하쿠나마타타' MC가 됐다.
높은 인지도와 많은 방송 경력을 가진 그들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후배 아이돌과 선배 연예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자연스럽게 망가질 수도 있으며, 동시에 연기와 노래로도 활동할 수 있다. 그들의 활약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연예산업의 어떤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10년 전부터 기획사가 대량으로 배출한 아이돌은 이제 각자의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됐고, 그들은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묵은 아이돌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산업 예비군인 셈이다. 지금의 2PM이나 소녀시대가 데뷔 10년차가 될 때 쯤이면 이런 아이돌의 숫자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스타 중 아이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두 아이돌로 데뷔해 그 중 몇몇이 스타로 남는다. 그리고, 한국 연예산업은 점점 더 특정 분야보다 전 방위 엔터테이너 중심으로 돌아간다. 전에는 연기만 하던 중년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 데뷔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아이돌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다. 어쩌면 10년 후쯤에는 노래만 부르는 가수, 연기만 하는 배우는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대중문화 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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