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양심이 논쟁거리가 됐다.'국회 폭력'사건의 강기갑 의원에 대한 무죄 판결 등 일련의 '시국 사건'판결을 시비하는 법조계 언론 정치권이 모두 법관의 양심을 논한다. 한쪽에서는 법과 양심을 따라야 할 법관이 개인의 이념 성향과 소신을 좇아 그릇된 판결을 했다고 욕한다. 반대쪽에서는 그리 욕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 독립과 법관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나무란다. 이를테면 재야 법조계를 대표하는 변협(대한변호사협회)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주장이 이렇듯 다르니, 어지간한 일반인은 헷갈리기 마련이다.
■ 헌법 103조는 법원 독립과 관련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헌법은"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하며, 이 헌법과 법률에만 구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보다 뜻이 좀더 분명한 느낌이지만, 역시'그 양심'이란 게 뭘 의미하는지 알 듯 모를 듯하다. 양심이 일상에서 흔히 올바른 마음을 뜻하는 데 비춰보면, 그걸 굳이 헌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양심을"자기 행위에 옳고 그름과 선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으로 풀이한 것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 혼란은 애초 영어의 Conscience를 양심(良心)으로 옮긴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멀리 어원을 추적하고 철학적 종교적 개념 등을 살필 계제는 아니다. 다만 'Good Conscience'나'Bad Conscience'표현을 고려하면, 양심보다는 신념이 본래 뜻에 가까운 듯하다. 독일 헌법재판소도 양심을 뜻하는 'Gewissen'을 "정당하다고 믿는 신념"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한 것도 독일 등의 규정을 닮았다.
■ 결국 헌법은 재판의 독립을 법관 개인의 신념에 맡겼다고 할 수 있다. 헌법과 법률 해석을 넘어서는 영역에서는 재량을 주는 동시에 '양심에 따라'라는 제한을 둔 셈이다. 이를 두고 법관 개인의 양심과 직업적 양심을 구분하는 것은 공허하다. 이념 논란도 그렇다. 우리가 모범으로 삼는 미국 대법원도 늘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균형을 통해 민주적 법치의 이상을 구현한다. 사법 개혁 명분은 좋지만, 개별 판결과 법관을 시비하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이제 그만두기 바란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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