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어도 정치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불법자금 의혹에 휩싸인 일본 의 집권 민주당의 모습은 과거 자민당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하토야마 총리의 위장헌금 탈세 의혹, 최고 실력자 오자와 간사장의 불법자금수수 의혹은 자민당 정권에서 되풀이된 부패 드라마를 다시 보는 듯하다. 처음에 강하게 의혹을 부정하다가 민심에 굴복해 수사에 응하는 모습도 과거와 다르지 않다.
자민당 정권의 부패 스캔들은 연례행사였다. 1976년 록히드 사건으로 다나카 전 총리가 구속됐고, 1988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전ㆍ현직 총리와 자민당 유력 정치인들이 국민의 분노를 샀다. 1993년 자민당 실세였던 가네마루 부총재가 건설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아 기소됐다.
특히 종합건설회사를 가리키는 '제네콘'은 대형 관급공사 낙찰에 개입하는 정치인의 주요 자금원이 되면서 정경유착의 핵심 고리가 돼 왔다. 관급공사 입찰에서 아무리 엄정한 심사를 거쳐도 결국 거물 정치인의 한마디에 낙찰자가 바뀌는 부패의 고리는 좀처럼 끊기 어려웠다. 일본의 고도성장과 자민당 장기집권이 결합해 낳은 모순이었다.
공교롭게도 오자와 간사장이 소비한 토지대금 4억엔 중 1억엔도 건설회사가 제공했다는 게 도쿄 지검의 시각이다. 정계 최고 실력자를 겨냥한 도쿄 지검의 수사는 정경유착 비리의 뿌리가 깊으면 역사적인 정권교체로도 쉽사리 뽑아낼 수 없음을 일깨운다. 고질적 정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일본 국회는 수없이 정치자금규제법을 개정해 왔고, 돈 덜 드는 선거를 위해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꾸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가 없다. 정치부패로 얼룩진 자민당 정권이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정치부패의 굵은 사슬은 여전히 일본 정계를 휘감고 있다.
오자와 간사장은 1980년대부터 언제나 특별히 흐린 날이 없었던 정계의 '프린스'로 정치의 한복판에서 비켜선 적이 없었다. 특히 다나카 전 총리나 가네마루 전 부총재 모두 그의 정치적 스승으로, 그들로부터 돈과 정치에 대해 속속들이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최고의 선거 달인으로 통하는 그가 늘 비리 의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자민당 부패정치를 물려받은 태생적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1955년 자민당을 창당한 하토야마 이치로의 손자인 하토야마 총리와 오카다 가쓰야 외무장관도 모두 자민당에서 정치를 익혔다.
오자와 의혹이 커지면서 54년 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로 국내외의 기대를 모았던 하토야마 정권은 출범 4개월도 안돼 위기를 맞았다. 민주당의 '얼굴'과 '오너'라는 총리와 간사장이 나란히 의혹의 도마에 올랐으니 이만저만한 악재가 아니다. 국민 실망이 커지면서 내각 지지율은 42%로 떨어졌다.
일본 민주당을 결속시킨 접착제는 두 가지였다 .올 7월 참의원 선거 승리라는 당면 과제와 오자와 간사장의 독재에 가까운 리더십이다. 오자와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을 따를 경우 권력 공백에 따른 당내 불안정이 불을 보는 듯하고 참의원 선거 준비도 차질을 빚는다. 그렇다고 지지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정권이 총리와 간사장의 비리의혹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산적한 과제를 풀기도 어렵다. 정치적 자정능력을 결여한 상태에서 개혁을 추진해도 반발만 커지고, 참의원 선거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
어디나 정권 교체와 더불어 낡은 정치행태를 바꾸지 못한다면 정치적 위기를 맞기 마련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정치인들은 너무 쉽게 잊는 것 같으니 딱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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