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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3부> 이탈리아(下) 명품기능인 양성하는 명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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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3부> 이탈리아(下) 명품기능인 양성하는 명품교육

입력
2010.01.2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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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시 중심에 있는 크레모나 국제현악기제조학교. 2층에 있는 1학년 교실을 들어서자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10여명의 학생들이 각자의 선반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각종 현악기 제조의 기본이 되는 나무틀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아직 1학년이라 피부색이 다른 학생들 중에는 이탈리아어가 서툰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일일이 실습과정을 챙기는 스콜라리 지오르지오(58) 교감의 설명에 언어는 큰 장애가 되지 않아 보였다. 지오르지오 교감은 "해외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아 1학년 교실에서는 가끔 언어문제를 겪는 학생들도 있다"며 "하지만 학생 개개인이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해 이러한 문제는 금세 극복된다"고 말했다.

철저한 전문성 중심의 교육

크레모나 국제현악기제조학교는 이탈리아의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젊은 학생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오르지오 교감은 "우리학교는 직업학교인 만큼 커리큘럼이 '전문성'을 강조하는 철저한 실습 위주로 짜여 있다"며 "13명의 실습 담당교사들도 이곳을 졸업한 기능장인들로, 꾸준한 자기개발과 노력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5년의 수업과정 중 기초과정인 1,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진학하려면 디자인, 음악사 이론 등 수강 과목 별로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만약 한 과목이라도 7점에 미치지 못하면 2학년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학생이 졸업과 동시에 각종 현악기를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있도록 철저히 현장실습위주로 짜여져 있다.

신입생들은 우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각종 현악기에 알맞은 나무를 고르는 법을 배운다. 현악기에 쓰이는 주재료는 단풍나무. 하지만 나무의 밀도에 따라 바이올린에 적합할 지, 비올라에 어울릴 지 용도가 달라진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본격적인 악기제작법을 배우게 되는데, 니스칠하기, 다양한 무늬파기, 접착제 바르는 법 등을 차례대로 습득한다.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곧바로 악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졸업 후 3~4년 가량 도제식으로 장인들 밑에 들어가 정교한 교육을 받은 후,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딴 제품을 내놓게 된다. 지오르지오 교감은 "실력을 갖췄다고 인정되는 기술자를 골라, 그가 만든 제품을 전 세계 음악가들에게 판매하게 된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명성을 쌓게 되면 장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크레모나시에는 140여명의 장인이 있는데, 이들이 제작하는 현악기의 한대당 가격은 3,000만원가량. 장인 한 명이 1년에 7~8대의 현악기를 제작하고 있어 이들의 연봉은 2억원대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학교의 교육과정 중에서 특이한 점은 제작 실습 못지 않게 영어와 수학, 이탈리아어 등 비전공 과목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지오르지오 교감은 "이탈리아에서는 직업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과정은 물론 대학 기초 과정에 대한 수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을 진학하는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취업보다는 대학을 진학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에 접목된 도제식 교육

5년의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졸업을 한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졸업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학교의 추천으로 크레모나 지역에 있는 장인들의 공방에서 100시간 정도 도제식 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100시간은 학교에서 정한 의무시간일 뿐 일부 유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 넘게 장인들 밑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아 전문성을 키운다.

지오르지오 교감은 "학교에서 5년 동안 배운 것을 실제 현장에서 접하는 것 또한 우리학교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중요한 일"이라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장인의 길로 들어서는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도제식 교육과정 기간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제작한 악기들을 음악가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준비단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폭적인 지원과 입학 졸업의 어려움

이탈리아에서는 고등학교 과정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크레모나 국제현악기제조학교 역시 마찬가지. 특히 이 학교의 경우 '스타우프'재단으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기 때문에 연간 100유로(한화 17만원) 정도의 교육세를 제외하면 수업료에서부터 실습 재료까지 무상으로 지원된다. 하지만 수업료가 무상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입학은 물론 졸업도 녹록치 않다.

지오르지오 교감은 "유학생들의 경우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우 3학년 과정으로 편입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이탈리아어와 음악사는 물론 음향물리학까지 평가하는 입학 시험이 까다롭기 때문에 보통 서류와 면접으로 평가하는 1학년 입학을 하고 있다"며 "어렵게 입학을 해도 입학생의 20%는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전문지식 위주의 교육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장인의 길에 녹아들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 이탈리아의 명품 교육이 오늘날 이탈리아 명장 배출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이탈리아의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이 의무교육기간이다. 고등학교부터는 적성에 따라 진로를 결정한다. 이탈리아의 대학 진학률은 50%에도 못 미친다. 일찌감치 진로에 맞는 교육을 받아 취업하는 것이 이탈리아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추세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는 전문 교육을 담당하는 고등학교 과정이 잘 발달돼 있다. 전체 학교의 90%가 국ㆍ공립학교이다.

직업학교 역시 분야별로 3~5년 과정의 실습 중심으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크레모나(이탈리아)=김성환기자

■ "한국서 대학 포기하고 입학… 장인의 길 보여요"

"이 곳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나도 명장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국제현악기제조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양찬수(28)씨. 5년 과정 중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양씨에게 한국의 대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크레모나의 직업학교에 유학 온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양씨는 "독일과 미국의 학교도 알아봤으나 크레모나 만큼 장인들의 전통이 유지되는 곳은 없었다"며 "기능 장인들이 많은 것은 물론 도시 전체 분위기가 현악기 제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지식 습득이 가장 용이하다고 생각했다"고 유학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실제 5년간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의 대학을 포기하고 올 만큼의 전문 지식을 익힐 수 있었다"며 "커리큘럼 자체가 실습 중심이라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레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크레모나의 국제현악기제조학교를 3년 전 졸업하고 도제 수업을 받고 있는 최민경(28)씨는 크레모나에서 유일하게 공방을 갖고 있는 한국인 장인 이형수(40)씨 밑에서 기술을 익히고 있다. 최씨는 "한국에서 평생교육을 얘기하지만 이 곳이야말로 진정한 평생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대부분이 하루아침에 장인의 길을 도전하기보다는 긴 안목으로 전통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분야별로 전문성을 가진 장인을 양성한다는 목표가 이탈리아 직업교육의 핵심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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