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복판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서 있고, 대한민국의 한 복판에도 세종시라는 도시가 뚝딱 만들어지고 있다. 대한 민족의 순발력과 융통성이 세종대왕 보시기에 참 흐뭇해야 할 일인데 과연 그러실까. 기실 세종시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당론에 파열음을 낸다. 사람들은 이제 점점 세종시의 추진 의도나 충청도민에게 한 약속이 무엇인지 잊고 있다. 세종시의 핵심이 대한민국의 병폐로 손꼽히던 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몸부림, '탈 중심주의'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하다.
서울은 이상한 도시이다. 겉으로는 '서울, 소울'이라며 영혼을 부르짖지만, 대한민국의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 노릇을 한지 오래다. 필자가 말하는 중심주의는 서울은 대한민국의 중심이고, 그 서울의 중심은 강남이며, 또 다른 교육의 중심에 서울대가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말한다. 기이하게도 강남(부동산)과 서울대(교육)는 대한민국의 1류라는 함수를 규정짓는 X와 Y축과 같아서, 이 함수로 대한민국 사람들의 목구멍 깊숙한 욕망을 요약하자면 '강남에 살면서 서울대에 가고 싶다'이거나 '서울대를 나와서 강남에서 살고 싶다'로 요약될 지경이다.
이 거대한 구심력의 핵심을 깨려는 몸부림, 그게 노무현 정권 때 논의 되었던 수도 이전이었고 서울대 폐지론이었다. 이 담론의 실천적 노력의 한 가닥이 가녀리게 살아 남은 것이 세종시다. 그러나 이젠 그곳에 삼성과 고려대와 카이스트가 들어선단다. 행정부처는 아무도 가지 않을 터이고 관료대신 노동자와 학생들이 그곳에 터를 잡으라고 나랏님이 명하신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혁신도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의 뒤에는 결코 서울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 땅의 지독한 중심주의가 다시 한번 승전고를 울리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현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유행어는 요즘 모 개그프로에서 술 취한 개그맨이 외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닐까 싶다. 이걸 부동산 시장 버전으로 외치자면 이렇게 바뀌는 거지. '서울에서만 살아야 하는 더러운 세상'
너무 오랫동안 우리 민족은 중심주의에 갇혀 살았다. 유럽에는 대학 서열이라는 것이 없다. 유독 한국 유학생들만 1968년에 이미 사라진 소르본 대학을 찾고, 네이버에는 '베를린 대학이 더 좋아요, 훔볼트 대학이 더 좋아요'란 웃지 못할 질문이 올라온다.
세종시 수정안은 우리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중심만 기억하는 구심력의 세상'에서 버텨 내야 한다는 암울한 인증서와 같은 것이다. 국무총리가 서울대 총장이라는 상징성. 대통령이 서울 시장 출신이라는 상징성의 총화가 만들어낸 합작품이 세종시 수정안이다.
자신의 꿈과 이상이 이렇게 기이한 형태로 무너져 내리면서 자신이 의도한 것과 정반대로 흐르고 있는 정국을 노 전 대통령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개그 대사의 한 줄로는 차마 요약되지 않는 분노와 허탈의 혼돈감과 혼란, 수정과 뒤집기로 점철된 모든 과정에서 국민 혈세가 하릴없이 새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지방대 교수이면서도 악착같이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나 역시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해 본다. '그렇게 두려운가? 서울을 떠나기가' 이 질문에 끄떡이는 모든 이들 역시 세종시라는 업(業)을 만들어낸 잠재적 공모자이다. 이제 우리는 세종시라는 표면이 아닌 그 이면에 도사린 중심으로 쏠리는 욕망, 대한민국의 오래된 환부와 다시 한번 직면해야 할 때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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