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 519호. PD수첩 사건을 맡은 문성관 판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위를 쭉 둘러 봤다. 법정은 젊은이보다 3배는 더 많은 60,70대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문 판사는 시선을 거둔 뒤 동요가 일어날 틈도 주지 않고, 담담하게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중간중간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감추지 못했다.
정치, 사회적으로 폭발성이 강한 사안이라는 점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조금은 지루한 40여분이 흐른 뒤 문 판사는 마지막으로 '무죄' 주문을 내렸다. 이어 방청석에선 기다렸다는 듯 고성과 삿대질,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판사 옷 벗겨!" "이게 법이냐"는 항의를 뒤로 하고 문 판사는 법정 문을 나섰다. "일본 놈들보다 더 나쁜 것들!" "김정일이 법원까지 장악해서 큰일이야!"는 고함도 들렸다. 이후 취재진이 판사실로 찾아가자 문 판사는 "지금은 정신이 없다"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특히 법정의 검사석과 변호인석, 고소인과 피고인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법정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2층 로비로 내려온 조능희 PD와 변호인 등은 수사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메일 압수수사를 당한 김은희 작가는 수사검사를 상대로 관련 소송을 진행할 뜻까지 비쳤다. 반면 민동석 전 농림수산부 정책관은 외교관 출신으로는 이례적이다 싶을 만큼 재판부와 PD수첩을 격하게 비판하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사실 판결선고 1시간 전부터 법정 안과 밖은 방청객이 몰리고 고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을 연출, 판결 후의 반응을 예고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법정 문이 열렸으나 32석의 좌석에 앉지 못한 어버이연합 노인회원 등 40여명은 맨 앞 기자석의 취재진 옷을 잡아당기고, 취재노트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법정 통로가 막혀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선고가 진행되는 도중 법정 진입에 성공했을 정도였다. 보안경찰과 법원직원이 폭력장면을 녹화하면서, "모욕을 할 경우 퇴정 조치 하겠다"라고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런 소란 속에 광우병 사건 재판의 3막 중 1막이 끝났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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