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질병관리본부와 국립보건연구원은 한국인 18만명의 혈액을 추출했다.
여기서 유전자를 뽑아 보관하는 '유전자은행'을 구축하는 중이다. 이 유전정보는 연구자들에게 분양돼 질병 관련 유전자를 찾고 치료법을 개발하는데 쓰인다.
이에 대해 생명윤리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전자라는 개인정보가 어떤 목적으로 활용되는지 혈액을 제공한 당사자들이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유전정보
인간 게놈프로젝트로 사람 유전자가 모두 알려지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유전자가 어느 질병과 관계 있는지를 밝히는 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려면 가능한 많은 사람의 유전정보가 필요하다. 가령 특정 유전자가 여러 사람에게 모두 같은 질병을 일으킨다면 그 유전자가 해당 질병의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한국인 유전자은행을 구축하는 '한국인유전체역학조사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001년 경기도 안성과 안산에서 시작돼 2005년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국민은 정기적으로 무료 건강검진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
코리아리서치센터가 2006년 이 사업 참여자 3,2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연구'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61.6%로 절반이 조금 넘었다.
또 이 사업의 유전자검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받아 만족했다는 답변은 40.8%로 절반이 안 됐다. 2008년 조사에서는 각각 66.5%와 69.3%로 조금씩 나아졌다.
역학적,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유전정보를 모으기 위한 유전자은행의 필요성과 질병 관련 유전자 발굴의 중요성은 학계 전반에서 인정한다.
하지만 생명윤리학계는 관련 연구 참여자가 연구목적을 정확히 인지하고 동의했는지, 개인정보 수집 절차와 활용 방식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전정보 제공자의 상당수가 사업목적을 건강검진으로 잘못 알았거나 아예 몰랐고, 사전 설명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상황은 생명윤리학 관점에서 문제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생명윤리 전문가가 참여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성수 국립보건연구원 유전체역학과장은 "사업목적을 똑같이 설명해도 사람에 따라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어 추가로 동영상 설명도 계획했고, 사업 수행 기관별로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의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IRB는 피시험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의료기관 내에 설치된 상설조직이다.
어디까지 차별이고 권리인가
인간 게놈 연구가 시작된 20년 전 인류는 유전정보의 오남용이 새로운 차별과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놈 해독이 상업화하고 해독 결과가 디지털화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유전정보가 유출돼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생겼다.
이에 유네스코(UNESCO)는 1997년과 2003년 2005년 잇따라 게놈과 윤리에 관한 3개의 선언을 채택했다. 모두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 금지가 주요 골자다. 국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도 비슷한 조항이 마련됐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유전자검사로 피부나 호흡기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나온 근로자가 화학물질을 다루는 회사 면접에 응시한다고 치자.
최경석 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건강을 위해 입사하지 말라는 고용자와 위험해도 좋으니 일하겠다는 근로자의 의견이 충돌할 때 과연 어디까지가 차별이고 권리인지 현재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보험 분야에서도 유전정보는 민감한 사안이다. 과학자들은 유전자와의 연관성이 비교적 많이 밝혀진 유방암이나 위암 간암 유전자검사 정도는 가까운 미래에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암 보험 가입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몇 가지 암의 발병 가능성을 스스로 확인하는 유전자검사 키트가 나왔다. 의사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유전자 자가진단을 한다는 얘기다. 타인의 침이나 혈액을 가져다 이런 키트로 유전정보를 얻어 협박용으로 인터넷에 공개하는 행위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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