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시월 보름이 되면 납자들은 산문에 빗장을 걸고 한 철 용맹정진에 든다. 겨울 석 달을 한 곳에서 묵언수행하는 동안거(冬安居)는 간화선의 수행 가풍이 뿌리내린 뒤 누백년 이어진 절집 전통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1일(음력 10월 15일), 한 떼의 수행자들은 동안거 결제와 함께 되레 산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지리산을 에워 도는 팔백릿길에 '움직이는 선원'을 세웠다.
만행(卍行) 쉰 하루째인 20일, 걸음을 잠시 멈추고 경남 함양군 백연리 연꽃어린이집에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벌인 스님들을 찾아갔다. 연 이틀 내린 보드라운 비로 설한풍의 표정을 누그러뜨린 지리산은, 납자들의 장삼과 같은 옅은 잿빛으로 젖어 있었다.
"스님은 자가당착에 빠지신 것 같습니다. 출가하고 얼마 안 돼 복지사업에 뛰어든다고 해서, 중도연기를 저버린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열반해탈로 이어지는 수단 아닙니까? 복지라는 수단을 통해 세상에 참여하고 중도를 추구하는 것도 깨달음의 길 아닙니까?"
한 젊은 스님이 무람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실상사 화엄학림연구원 원장 혜경 스님이 "공부보다 복지사업에 치중하는 것은 종교 집단의 세력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하자 대차게 되받은 것이다. 스님들은 장(長)과 소(少)를 따지지 않고, 예와 격에 매이지 않았다. 야단법석의 주제는 '깨달음'이었지만 좌중의 가운데 앉은 도법 스님(인드라망공동체 상임대표)부터 "졸린 얘기보다 구체적인 얘기를 해보자"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이끌었다.
'움직이는 선원'은 실상사의 스님 7명이 지리산길을 선방의 좌복 삼아 화두를 참구하는 동안거 수행처다. 하루 사오십 리씩 열흘을 걷고 하루는 이날처럼 야단법석을 벌인다. 각자 붙들고 있는 화두는 다르겠지만, 이들이 칼바람을 헤치며 탁발행자로 나선 모습은 그대로 '생명'이라는 성성한 화두가 된다.
댐과 케이블카 건설 논란 등으로 신음하고 있는 지리산에서 인간의 욕망을 비춰보게 만드는 것. 개발과 보존 가운데 실상(實相)으로 존재할 중도를 찾자는 것이 움직이는 선원이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다. "지리산은 그 자체로 부처의 몸이며, 장엄한 수행의 도량"이라는 '지리산 성지화'의 움직임과 줄기가 같다.
움직이는 선원을 이끄는 도법 스님은 "세상이 변한 만큼 안거라는 형식도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용하고 안정된 수행 도량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탐진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중생들의 삶의 현장을 수행 도량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움직이는 선원이 지리산을 선택한 것은 사찰 경내뿐 아니라 마을과 길, 생명이 살아가는 자연 전체가 수행의 도량임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움직이는 선원은 장소뿐 아니라 참구의 방식도 산중 안거와 차이를 보인다. 묵언과 장좌불와로 상징되는 딱딱한 모습이 아니다. 도법 스님은 "간화선은 본래 기계적으로 수행을 획일화하는 어떤 시도도 부정하는 것"이라며 "나는 오늘의 수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대화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노장 스님과 젊은 수좌가 중도연기라는 주제를 놓고 대학생 세미나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그런 시도의 일부다.
열띤 대화로 방구들이 뜨듯해질 무렵 야단법석이 파했다. 화엄사, 쌍계사, 대원사, 벽송사, 실상사 등에서 찾아온 30여명의 수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다른 스님들이 다 떠난 후, 기자들을 상대하느라 공양 시간을 놓친 도법스님이 귀마개와 목도리를 챙겼다. 등산화 끈을 여미는 스님 너머로, 지리산 자락의 푸르스름한 이내가 내려앉았다.
함양=글ㆍ사진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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