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녹색 정책은 말과 법이 다릅니다."
어느 전자업체 직원의 하소연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럴 만 했다. 그가 지적한 것은 에너지 절약을 명문으로 4월부터 2012년까지 한시적으로 가전 제품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정책이다.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생활가전 별로 정격 또는 월간 소비전력이 300W~400㎾ 이상이면 5%의 세율이 부과된다. 전기를 많이 쓰는 가전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개별소비세 부과 대상은 절전 효과가 떨어지는 에너지 효율 2, 3등급 제품들로 보급형 세탁기나 냉장고, TV 등이 주종이다. 이들 제품은 200만~400만원에 이르는 비싼 LED TV, 프리미엄 냉장고와 세탁기 등 1등급 제품보다 절전 효과가 떨어지나 저렴하다. 결국 서민용 가전 제품 가격만 올라가는 셈이다. 그렇다고 서민들이 고가의 에너지 효율 1등급 제품을 사서 쓰기도 힘들다. 이 바람에 전자업계에서는 개별소비세에 대해"실효성이 없는 저탄소 녹색성장 선전용 세제로 서민들만 힘들게 한다"고 꼬집는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와 대조적이다. 미국은 절전 효과가 높은 에너지스타 표시 가전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에게 최대 200달러의 현금을 주기로 했다. 일본도 절전 효과가 높은 가전 제품을 구입하면 가격의 5~10%에 해당하는 에코포인트를 주고 있다.
비절전형 제품에만 세금을 부과하는 우리나 절전형 제품에만 보조금을 주는 미국, 일본의 친환경 정책은 패턴은 비슷해도 결과는 아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보조금 정책은 절전 제품의 구입을 유도해 에너지 절약과 산업 진흥을 동시에 꾀한다. 반면 개별소비세 부과는 비절전형 가전 제품의 구입을 막기만 할 뿐,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당근은 없이 채찍만 때리는 꼴이다. 지금이라도 외국의 친환경 정책을 다시 들여다 보고 어떤 전략과 정책이 시장확대와 에너지 절약을 동시에 충족시킬 지를 검토해야 한다.
최연진 산업부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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