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켜니 친구의 전화번호가 뜹니다. 사업을 하는 고교 동창입니다. 통화를 하니 저를 찾아오고 있다 합니다. "바쁠 낀데 우짠 일이고?"라고 묻는 제 질문에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우짠 일이긴, 니도 보고 바다도 보고 싶어 간다." 사업에, 사회 활동에 바쁜 친구에게 지금까지 이런 한가한 시간은 별로 없었습니다.
친구가 친구를 만나러 오는 것은 별스럽지 않은데, 뜬금없이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에 왠지 제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친구와 함께 저무는 겨울 바다를 찾아갔습니다. 동해는 여전히 웅장한 희망의 음악이었습니다. 둥근 수평선에서부터 거침없이 밀려온 파도는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해변의 몽돌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오래 침묵하던 친구가 물었습니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운 '겨울 바다'란 시 알제?" 저는 대답 대신 시를 외워주었습니다.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그 구절에서 친구가 울기 시작합니다. 쉰이 넘은 남자가 바다 앞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친구의 손을 꽉 잡아주었습니다. 친구의 손은 살아온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참 거칠었습니다. 친구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니는 '바다'가 무슨 뜻인 줄 아나? 이렇게 니 눈물까지 다 받아주니까 바다라 하는 기라."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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