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중국, 일본의 국제적 위상 및 상호 관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몇몇 계기가 있었다. 일본 민주당 정권은 지난 15일 인도양에서 미국, 영국, 파키스탄 등 다국적군 함정에 제공해오던 무상 급유지원 활동을 중단했다.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참여를 명분으로 지원을 시작한지 8년여만이다. 전 자민당 정권이었다면 미국의 지원계속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민주당의 정책이 구현된 사례라 할 것이다. 또 여기에는 각종 민생ㆍ복지 공약을 내걸었던 민주당이 재원 마련을 위해 가능한 모든 곳에서 비용을 줄여야 할 필요성도 작용했다.
그러나 앞서 이 같은 미일관계 변화나 일본의 경제적 위상추락 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이 인도양에서 일본 역할을 대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중국은 지금껏 미국 주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불개입 원칙을 천명, '테러와의 전쟁'을 남의 일처럼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중국이 사실상 아프간 다국적군 활동의 일환인 인도양 급유지원을 고려하는 것은 실현 여부에 앞서 그 자체로 자못 의미심장하다. 보도가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극우 성향의 일본 산케이 신문에 의해 이뤄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달라진 위상과 태도가 충분히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변화가 감지되는 이런 움직임은 세계 주요 2개국(G2)으로서의 합당한 국제적 책임분담을 강조해온 미국의 입장에 공감한 결과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아직 G2에 미치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쳐온 중국이지만 글로벌 현안에서의 공동대처를 요구하는 전세계적 압박을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꺼풀만 벗겨보면 중국의 행동에는 G2로서가 아닌, 그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그만한 이유가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인도양 급유지원만 하더라도 거기엔 아프간 및 중동 정세에 대한 정보공유, 인도양 원유수송로 방위 참여 등을 위한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새겨봐야 할 것은 중국이 G2 지위를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대체로 완강히 G2임을 거부하다가도 특정 사안에서 마지못한 듯 G2임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G2는 기회이자 책무이기 때문에 중국은 G2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이다.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음은 여러 사안에서 뚜렷하게 대비된다. 미국은 대테러전에 발이 묶여 아프간전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며 눈덩이 재정적자에도 불구, 막대한 전비를 쏟아 붓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자유로운 중국은 전세계를 돌며 자원 사냥을 하면서 국내적으로는 미래형 녹색산업에 달려들어 미국을 무섭게 앞질러 가고 있다.
G20에 속한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게도 G20은 기회이자 책무임이 분명하다. 또 기본적으로 G20의 형성은 배려, 존중의 결과라기 보다 필요의 산물이다. 지구적 차원의 문제해결을 위해 모였다고는 하지만 냉정한 국제사회의 역학 및 이해관계도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로부터의 관점에서 올해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그것을 기회로만 여기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 G2, G7, G8 등이 우리에게 책무를 요구할 때 중국처럼 이중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국익을 지켜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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