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부터 김시습을 읽기 시작 했지요. <김시습 평전> (심경호지음 /돌베개 2003)이 출간되었을 때, 옳다꾸나! 반기며 책을 사 놓고서는 6년이 지나도록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냥 곁눈질로 건성건성 훑으면서 생각만 했지요. 이 책은 내가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읽으리라. 김시습>
나는 아직 이 세상에서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미련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갈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환락가로 변하고, 한 시대를 가로질러 왔던 바람도 결국 낯선 세상에서 길을 잃고 사라질 운명. 이제 질주하던 시간의 고삐를 풀고 비빌 언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이 다할 즈음, 낙동강 끝자락에 위치한 폐교에 창작 스튜디오를 세웠습니다. 집을 지을 땅도 조금 사 두었습니다. 이쯤 되면 저는 운이 좋은 편이지요. 더불어 같이 작업하며 살아갈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 있고, 세상의 끝 마을이라 부르는 그곳에서도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사색과 집필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이제 김시습을 읽으리라. 그러면서 두 번 세 번 밑줄 그어가면서 <김시습 평전> 을 읽었습니다. 이어서 <금오신화에 쓰노라> (김시습 씀. 류수,김주철 옮김/ 보리 2005)를 읽으려는데 지난 해가 다 저물었고, 저는 딱! 아홉수에 걸려 버렸습니다. 김시습이 죽은 나이 오십아홉 살이 다 된 것 이지요. 어, 벌써 그렇게 나이를 먹었나?! 이제 어떻게 지나온 삶을 정리하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다시 시를 써 볼까? 차라리 후학들을 위해 두툼한 연기론 책 한 권 펴 내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숭숭한데, 한국일보 장병욱기자가 그 어눌한 화법으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무얼 쓰라는 것이지요. 삶에 대해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금오신화에> 김시습>
저는 아직 회고록을 쓸 입장이 아니고, 노년의 삶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1952년 음력 윤 5월에 태어나서 정확한 생일은 제 나이 예순 하나가 되는 해에 돌아옵니다. 그래도 생일 밥은 먹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어떻게라도 그때까지 살아 있기를 희망 합니다. 제 삶의 타임 테이블은 그때까지입니다.
그 이후는? 그냥, 소요유(逍遙遊). 장자(莊子)의 말마따나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그러면서 놀 수 밖 에 없겠지요.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팔십에 이르는데 아직 젊은 나이에 무슨 호들갑인가?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렇지요. 제가 종사하는 업종에는 칠순을 넘긴 현역이 더러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렇게 존재하면서 한국 연극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삶의 타임 테이블은 계산법이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삶의 타임 테이블은 들끓는 세상에 저항하고 충돌하면서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일 수 있는 '초개같은 청춘'의 시간 입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저항의 불은 꺼지기 마련입니다. 은둔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체험에서 걸러낸 사색, 뒤따라오는 세대를 위해 길을 닦는 일, 그리고 다가올 죽음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일일 것입니다.
바야흐로 노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괴테는 노년에 이르러 <파우스트> 를 완성했고, 피카소는 노년까지 실험적인 작업 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듯 노년기 또한 삶과 예술에 대한 나름의 깊이와 너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저는 아직 이런 노년의 삶과 작업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지금까지 영원한 청춘인 양 질주하는 시간을 만끽해 왔다는 것입니다. 파우스트>
그러고 보니 벌써 청춘의 시간이 지나가 버렸네요.
To be or Not to be......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이제 비로소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네요. 나도 어느새 셰익스피어 브레히트 김시습 모두 저 세상으로 가 버린 나이가 된 것입니다. 브레히트와 김시습은 딱 아홉수에 걸려 우리 나이로 오십아홉에 죽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나이 오십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극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몇 년 작업하다가 죽었는데, 그 극장이 지금까지 셰익스피어 극을 공연하고 있답니다.
생전의 어머님이 내게 남긴 유언이 또 마음에 걸립니다. 좀 그럴듯한 여운을 남기는 말씀을 하시던지 아무 말 없이 돌아가시지 않고 끝까지 경계하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아홉수를 조심해라. 밖에 나가 놀지 말고 문을 닫아걸어라.
굿을 해도 좋다. 대신 무당을 부르지 말고 중을 불러라."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절에서 하는 사십구제가 굿의 형식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판을 벌여 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논리대로라면, 죽은 어머니를 위해서 한 것 ?아니라 살아 있는 나 자신을 위한 씻김 제의였던 셈이지요. 이제 세속적인 시간 속에서 그만 뒹굴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 존재의 집은 어디 있는가?
내가 낙동강 끝 마을 도요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존재 근거를 찾아 간다는 것 아닐까요? 오십아홉에 너무 이른 생각 아닌가? 누가 그렇게 질책한다면, 나는 이렇게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변을 털어 놓을 수 밖 에 없네요.
"나는 이 세상에 넌더리가 났네.
삶은 투쟁인데 적은 보이지 않고… 소녀시대가 춤추네.
결국, 이런 세상에 빌붙어 있는 나 자신이 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네.
이제 강 건너 저쪽으로 건너가려네."
그러나 짐을 싸려니, 오십여덟 해를 같이 살아온 오욕칠정(五慾七情)이 다 달라붙어 기억하라,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라! 아우성을 치네요.
그래서 생애사적 스토리텔링이나 감상적인 회고, 세속에서 얻은 자화자찬식 기록 따위를 걷어 내고 남은 것…, 지워지지 않는 기억, 삶의 의문, 비밀스런 희망의 풀씨 같은 삶의 찌꺼기를 가벼운 스케치 풍으로 써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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