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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품위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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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품위 있는 사회

입력
2010.01.1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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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품격 혹은 품위, 선진화, 일류국가 등과 같은 슬로건이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상이한 해석이 있다. 먼저'국가위상 업그레이드' 담론은 신(新)국가주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이 들린다.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위기관리가 결국 국가 단위에서 가능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모순을 지적하면서도, 식민지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에서 으레 등장하는 애국주의적 자부심의 발로라는 지적이다.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 기본

다른 한편으로, 이 흐름은 우리가 성취한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우리 경제수준은 이미 도약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에 품격이나 품위와 같은 질적이고 가치적인 방향 설정이 자연스러운 시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의 품위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또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된 답은 없는 듯하다.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은 <품위 있는 사회(the decent society)> 에서 "품위 있는 사회란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으며, 제도를 통해 그 권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품위 있는 사회의 조건은 당연히 '좋은' 제도이지만, 제도의 운영방식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갈릿의 철학은 자유주의를 원칙으로 하면서 그 부작용을 외면하지 않는 존 롤즈(John Rawls)의 정치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는 칸트의 인본주의적 가치와 국가에 의한 분배 정의를 사회의 품격을 유지하는 기본전제로 본다.

이렇게 본다면 품위 있는 사회란 경제적 물질적 측면에서의 최소 요건을 충족하면서 국가와 국민, 제도와 시민, 시민과 시민 사이의 정신적 고귀함을 손상시키지 않는 사회이다. 마갈릿은 법적, 정치적, 사회적 시민권이라는 고전적 구분을 수용하면서'상징적 시민권'을 새로 추가한다. 상징적 시민권은 그 사회의 문화적, 정신적, 인격적 자산으로부터 모든 시민들이 배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결국 품위의 완성은 외형적 물질이 아니라 문화적 자산과 인간성 존중과 같은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와 실천, 인권보장과 관련된 제도적 장치는 결코 사치가 아닌 품위 있는 사회의 기본 조건임에 틀림없다.

국가의 품격을 높이겠다는 발상이 자칫 외형적인 경제지표의 향상이나 무리한 콘크리트 건축에 머문다면 미완성에 그친다. 지표상으로 우리 경제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소득 불평등, 부패지수, 인권지수와 같은 질적 지표에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국민의 행복감 지수가 높다는 부탄이나 네팔을 예로 들면서 지나치게 정신주의적인 잣대를 들이댈 생각은 없다. 우리 사회는 충분히 산업화한 사회이고 그에 걸맞은 국민의 물질적 욕망을 외면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 정책은 이러한 지표에 맞추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

과시적인 초고층 건물이나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전시물의 건설보다 국민의 정신적 풍요롭게 하고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를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인권, 공정한 법 집행, 질서의식과 같은 민주적 제도의 학습과 실천뿐만 아니라 예술적 취향이나 다문화 능력과 같은 고차원의 문화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감각 있는'외국인은 서울 강남의 화려한 아케이드를 보고 한국의 품격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생활 자체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품위를 평가한다. 이렇듯 국가의 품격 향상은 단기적인 '근대화 전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장기 지속적인 발전의 연속성을 통해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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