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기업인 출신 세바스티안 피녜라(60ㆍ중도우파 '코알리시온 포르 엘 캄비오'소속)가 17일 치러진 칠레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했다. 이로써 칠레는 지난 1990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실각 이후 20년간 계속된 중도좌파연합 '콘세르타시온'의 집권시대를 마감하고 우파 시대를 열게 됐다.
18일 현지언론에 따르면 1차 투표 때 44.03%를 득표, 1위를 달렸던 피녜라 후보가 이날 2위 후보인 집권당 에두아르도 프레이와 벌인 결선투표에서 5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당선자 임기는 3월 11일부터 4년간이다.
피녜라 당선자는 미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유학파로 귀국해 신용카드 사업을 통해 부를 얻었다. 이후 그는 항공사 란(LAN)칠레, 공중파TV채널 등을 소유한 거부(총재산 약 12억 달러)로 성장했다. 1990년부터 상원의원을 지낸 피녜라는 2005년 현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와 대선에서 맞서면서 우파 진영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피녜라는 기업인 출신답게 "사적 영역(기업)의 투자를 끌어내 공적 영역의 효율을 높이겠다"며 대선에 뛰어들어 20년 동안의 좌파정권에 물린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우파로 정권이 옮겨가게 됐지만 당장 칠레의 사회보장제도가 바뀌는 등 급격한 변화는 따르지 않을 전망이다. 피녜라 당선자는 유세에서 "현 정권의 업적을 존중한다"며 정책 연속성을 약속했고 "좋은 야당을 원한다"면서 좌파와의 화합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녜라 후보의 당선은 최근 중도 혹은 우파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남미의 정치 지형 변화를 가속화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AP통신은 18일 "바첼레트 대통령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자제한 것과 달리 피녜라 당선자는 베네수엘라, 쿠바에 불편한 외교를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적으로는 좌파와의 화합을 강조하지만 외교에 있어선 우파의 색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피녜라 당선자의 친형이 피노체트 정권에서 장관을 지내는 등 독재 시절의 그림자가 이번 선거 결과에 드리워진 것을 놓고 영국 BBC는 "젊은 세대가 주류로 나서면서 칠레인들의 기억에서 어두운 과거가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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