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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충무로가 부러워하는 美 정치영화의 토양

입력
2010.01.1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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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여배우 제시카 알바가 길거리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오바마"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히스패닉이라는 그의 인종적 정체성을 새삼 깨달으면서도 배우로서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시가 싱그럽게 느껴졌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TV뉴스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28일 개봉하는 미국 영화 '바비'엔 유명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애쉬튼 커쳐, 린제이 로한, 샤이아 라보프, 데미 무어, 안소니 홉킨스, 샤론 스톤… 숨이 가쁠 지경이다. 보통 크기의 4배 가량 되는 포스터를 써야 하지 않나 하는 괜한 노파심까지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에밀리오 에스테베즈다. 1970년대의 스타 마틴 쉰을 아버지로 두고, 80년대~90년대를 풍미한 찰리 쉰을 동생으로 둔 배우다. 한때는 청춘 스타였고 무어의 옛 연인이었다.

영화는 미국의 희망으로 불렸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 당한 1968년 6월 6일 하루를 재구성한다. 제목부터 로버트의 애칭. 백악관 입성도 가능해 보였던 케네디가 쓰러진 그날 한 호텔에 머물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미국의, 특히 민주당의 정치적 이상을 되짚는다. 주변을 묘사하며 핵심을 설파하는 영화적 미덕이 빛난다.

'바비'는 썩 괜찮은 영화임에도 완성도보다 제작 과정과 그 이면을 더 궁금하게 한다. 흉탄에 스러진 민주당의 옛 스타 정치인을 스크린에 불러낸 작업부터가 이채롭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정치색 짙은 영화에 할리우드의 별들이 대거 출연한 점은 부럽기까지 하다. 한국에서 그랬다간 '꼴보수' '좌빨'이라는 정치적 낙인이 배우들 평생을 따라다녔을 것이다.

배우들 대부분은 노개런티였다. 아마 제대로 출연료를 지급했으면 1억 2,000만달러는 족히 됐을 것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과 맞먹는 액수다. 에스테베즈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기만 한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집 물건을 파는 등 7년 동안 악전고투를 거쳐야 했다.

충무로로 눈을 돌리면 내쉬는 숨이 길어질 뿐이다. 이렇다 할 정치영화를 만들 토양은 척박하다기보다 아예 없다 할 정도다. 신구 세대를 가르는 색깔 논쟁은 잦아들었다고 하지만 그 불씨는 여전히 뜨겁다. 정부가 독립영화 전용관 사업자 선정에서 보수 성향 영화인들의 편의를 봐주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권 홍보 색채가 짙은 전쟁영화 제작을 위해 국가기관이 나섰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돈다. 정치적으로 자유롭지만 자유롭게 정치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황, 충무로의 현주소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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