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로 오는 길은 참담했다. 도미니카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까지의 10여시간 동안 아이티가 지옥의 땅으로 전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력과 물자와 구조대원을 실어나르는 트럭, 버스의 행렬을 마주보고 반대편에서는 끝없이 난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지, 무엇을 할 것인지도 모른 채 가족과 집을 잃고 무작정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었다.
한국 국제구조대 35명과 봉사요원 6명 등 50명과 함께 포르토프랭스를 향해 출발한 때는 17일 오전 7시(현지시간). 산토도밍고에서 도미니카 국경도시 히마니까지는 통상 5시간 거리. 그러나 난민 유입에 따른 교통정체 등으로 8시간을 예상했다. 여기서 포르토프랭스까지 다시 2시간 정도.
버스 한대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은 왕복 1차선 도로를 달린지 6시간여 만인 오후 1시 30분. 국경에서 2km 지점의 히마니에 도착했다. 지진 현장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보고에 따라 파상풍과 말라리아 예방 접종을 받았다. 히마니의 도미니카 군부대는 이미 구호작업을 위한 유엔의 지원막사와 텐트로 가득했다.
한쪽의 '멜렌시아 장군' 병원에는 수십여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 머리가 피로 범벅이 된 사람 등도 수십명이 보였지만 "병실로 들어가기에는 가벼운 부상"이라는 게 병원측의 얘기였다.
20여분 뒤 출발에 문제가 생겼다. 6톤 무게의 구조대 개인장비를 실은 콘테이너 화물차의 배터리가 나갔다. 난감했다. 도미니카에서 배터리를 가져오기에는 너무 늦었고 사람이 밀 수밖에 없었다. 구조대원 등 10여명이 힘을 쓴지 15분여 만에 간신히 시동이 걸렸다.
오후 2시 40분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엔 두 개의 얕은 철조망이 전부였고 아이티 쪽에는 조기가 내걸렸다. 아이티인들은 개조한 트럭에 빼곡히 매달려 줄줄이 조국을 탈출하고 있었다. 슬픔마저도 사치인 듯 이들에겐 표정이 없었다.
국경에서 포르토프랭스로 가는 길은 지대가 비교적 평탄, 지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그러나 담장이 무너진 건물은 부지기수였고, 건물이 통째로 붕괴된 것도 보기에만 10여채는 족히 됐다. 유엔군 부대의 건물벽도 무너져 있었다.
마침내 포르토프랭스에 들어왔다. 버스에 동승한 한국동서발전(주)의 오태환 차장은 "한국의 종로격인 델마거리가 가장 처참한 상태"라며 경사가 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구조대의 숙영지는 한국동서발전과 현지 업체가 공동으로 건설하는 'E-파워'라는 발전소 부지로 결정됐다. 담장이 견고,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시차 때문에 시계를 한시간 뒤로 돌려 오후 3시 40분 마침내 숙영지에 도착했다. 산토도밍고를 출발한 지 9시간 40분만이었다. 포르토프랭스는 두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국경에서 숙영지까지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바다와 만나는 반대쪽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최악의 상황을 보려면 수도 인근 까르푸 지역을 찾아보라는 말을 듣고 생각만 해도 섬뜩했다.
포르토프랭스(아이티)=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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