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에 회남재를 넘어 하동 악양에서 산청 덕산으로 가려던 것이 욕심이었다. 해발 926m, 남명 조식 선생이 지리산에 숨어있는 무릉도원을 찾아가다 산이 험해 남쪽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산고개가 회남재다. 비포장이었던 구절양장 산길에 시멘트 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차를 몰았다. 산 아래는 햇살이 따스했기에 산 위의 위험을 알지 못했다.
가끔 나타나는 눈의 흔적을 쉽게 여기고 회남재를 올랐다. 눈이 얼어 빙판이 된 길 위에서 바퀴가 공회전만 되풀이하다 오도 가도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길 왼쪽은 아슬아슬한, 깊은 낭떠러지다. 아차, 실수라도 해서 차가 빙판에서 미끄러졌다면 큰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다. 일행들의 얼굴에서 불안이 읽혔다. 나 역시 두렵긴 마찬가지다. 내 죄다. 내 어리석음이다. 결국은 레커차를 불러 4시간 만에 꽁꽁 언 채로 '회남(回南)'했다. 가끔 나타났던 눈의 흔적이 산의 경고였다.
산이 높아지면 눈이 얼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나는 그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작은 위험에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 경고를 인간이 무시하기에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잦은 지진과 쓰나미도 경고다. 사망자가 20만명에 달한다는 아이티 대지진도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붉은 경고'일 것이다.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에 더 큰 재난이 찾아오고 있다는.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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