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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정운찬 프레임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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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정운찬 프레임의 빈곤

입력
2010.01.1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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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는 자신을 '세종시 특임총리'라고 지칭하는 것에 서운해 하고 '마당발'이라고 부르는 것을 극구 싫어한다. 세종시 문제가 취임 이후 최대 과제였던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 외에 일자리 사교육 저출산 등 다른 의제도 많이 다뤘는데 언론 등이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다는 푸념이다. 또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만나지만 소위 '인맥 관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한 적 없는데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취임 후'세종시 특임'과잉 몰입

분명 총리 100일을 넘기며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소탈 솔직 겸손 소통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직설적이고 담백하게 말하지만 목소리는 낮다. 복선을 깔고 돌려서 얘기하는 정치적 어법과는 거리가 멀다. 한때 박근혜씨를 '설득'하겠다고 했다가 혼난 이후 그는 설득을 '이해와 협조'로 표현하는 문법을 새로 배우고 있으나 여전히 서툴다. 그가 믿는 구석은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카리스마는 부드러운 언행으로 뜻을 관철하는 것이고 진정성이 결여된 괜한 위세는 거부감만 낳는다는 믿음이다.

그런 그의 말투가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크게 거칠어졌다. 세종시 원안대로 정부부처가 옮겨가면 나라가 정치적 신뢰 상실을 뛰어넘는 대혼란에 빠지고, 정치적으로 사려 깊지 못한 일을 고치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국가를 위해 더 중요하단다. 행정부처가 옮겨가는 세종시는 수도분할이어서 융ㆍ복합이 특징인 현대 행정의 전문성을 해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고도 했다. 나아가 그는 세종시를 신도시 개발의 명품사례로 만들어 다른 나라에 수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을 향한 비판과 요구는 도를 넘는 느낌마저 준다. 정치적 아집으로 합리적 사고를 외면한다, 표 때문에 나라를 어렵게 해놓고 어떤 분은 전혀 반성도 하지 않는다, 원안대로 가면 나라가 거덜난다는 등 험한 말을 쏟아낸다. 한나라당 주류 쪽이 신중모드를 취하는 것도 불만이다. 정부가 어렵게 안을 마련했으면 여당이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되레 발을 빼면서 여기저기 눈치만 보고 있다는 푸념이다. 정부가 지난 주말 세종시에 입주키로 한 기업, 대학들과 서둘러 양해각서(MOU)를 맺으며 조기 입법을 압박한 것은 정 총리의 바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데 세의 흐름은 거꾸로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대국민 입장표명을 연기하고 한나라당은 국정보고대회조차 열지 못할 정도로 당내 갈등에 휘말려 있다. 야당은 수정안이 제출되면 곧바로 총리해임 결의안을 내겠다고 벼른다. 돈과 사람과 물자를 퍼부어 국토 중심에 사통팔달의 교육ㆍ과학 중심 명품 경제도시를 건설한다고 해도 지역여론은 균형발전과 정치신뢰 등 핵심가치를 훼손한 정체불명의 괴도시로 평가절하한다.

이쯤 되면 세종시 문제를 붙들고 지금껏 씨름하는 정 총리의 계산과 프레임이 뭔지 궁금해진다. 그는 이 대통령이 자신을 총리로 지명할 때 세종시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면서도 이 대목이 청와대의 주요 관심사인 것은 알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총리가 나름 뭔가를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위상과 관련된 승부수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국익과 괴리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학자적 순진함과 충정이었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정 총리의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판에서 그는 애당초 승부수 운운할 무게를 갖지 못했고, 국익 부분에서는 고향의 지지도 업지 못했다. 세종시를 헤매는 사이에 총리 역할은 흐려지고 정운찬 평판도 시시해졌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일을 벌인 까닭이다. 세종시는 정운찬의 몫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선악 이분법 탈피 큰 흐름 좇아야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허접한 국책 연구기관을 동원하는 촌스러운 짓이나 자아도취적 일방통행을 접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게 첫째다. 출생의 비밀은 외면한 채 7년 작품인 행정도시는 악이고 4개월 만에 급조한 경제도시는 선이라는 2분법적 접근도 어울리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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