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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심사… 미소 잃은 미소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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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심사… 미소 잃은 미소금융

입력
2010.01.1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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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서울 을지로3가 우리미소금융재단 사무실. 70대 노모와 함께 상담을 받으러 온 30대 여성 A씨의 얼굴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영어학원을 차리기 위해 5,000만원을 대출받으려던 그녀의 기대는 순진한 착각이었다. 창업자금 5,000만원을 대출 받기 위해 최소 2,500만원의 자기 자금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여성은 "사기를 당해 아파트까지 다 넘어갔는데, 안 되겠냐"며 매달렸지만, 상담사는 "규정상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30분간 끌다 빈 손으로 문을 나서는 순간, 노모는 끝내 서운함을 이기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나랏님이 우리 같은 사람도 살라고 만든 거라던데 왜 이리 복잡해!"

# 같은 날 서울 충무로2가 사회연대은행 회의실에선 상반된 광경이 벌어졌다. 이곳에서 최근 대출 받은 20여명이 참가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강단에 선 최모(29)씨는 "얼마 전 막내가 세상을 뜨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칼국수 집이 잘 되면 여러 곳에 기술도 전수할게요"라며 흐느끼자 여기저기서 덩달아 눈물을 훔쳤다. 막내 병원비로만 1,500여만원을 날린 최씨는 칼국수 가게마저 접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곳에서 2,000만원을 대출받아 한숨 돌렸다. 이날 최씨와 '짝꿍'이 된 상담사는 앞으로 5년 동안 한 달에 한번 이상 최씨를 방문해 사업을 관리해준다.

똑같은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를 표방하지만, 정부 주도로 설립된 단체와 자생적으로 성장한 단체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천양지차다. 정부 주도 단체는 '될 성 싶은 나무'를 서류상의 자격조건으로 따지지만, 자생 단체는 면밀한 상담을 통해 서류상의 자격보다 '일할 의지'를 평가한 뒤 사후 관리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대적 홍보 속에 출범 한 달여를 맞은 미소금융재단이 규정만 따지는 관료적 운영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센 까닭이다.

15일까지 전국 미소금융재단 21개소에 몰린 상담자는 8,100여명. 이중 2,400명(30%)만이 대출 적격자로 분류돼 이중 27명 만이 실제 1억 4,8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렇다 보니 상담자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우리미소금융재단 관계자는 "출범 첫 주에 1,400여명이 몰렸으나, 지금은 하루에 30~40명 온다"며 "파견 나온 콜센터 직원 2명도 이달 말 복귀한다"고 말했다.

미소금융이 이처럼 '무늬만 서민대출'로 전락한 것은 우선 대출조건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신용 1~6등급 및 신용불량자 제외), 채무비율(50% 미만), 자기자금 비율(대출금의 50% 이상) 등 넘어야 할 문턱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단측은 "무조건적인 퍼주기를 해줄 순 없다"며 "대출 부실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신용이 괜찮은 서민은 은행을 가라고 하고, 신용이 불량한 서민은 빌려줄 수 없다면 대체 누가'서민'이냐"는 원성이 높다.

이에 비해 사회연대은행, 열매 맺는 재단, 신나는 조합 등 자생적 마이크로 크레디트 단체들은 서류상의 조건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서민여부를 가리기 위한 재산 보유와 소득 수준 기준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단체의 대출금 회수율은 80% 이상이다.

사회연대은행 관계자는 "상담을 통해 자활 의지와 창업 아이템을 면밀히 살핀 뒤 대출 후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며 "회수율 우려 때문에 미리 문턱을 높일 게 아니라, 대출의 전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연대은행은 대출이 확정되면 전담 상담사가 배치돼 5년간 지속적으로 관리하지만, 미소금융은 대출 후 거치기간(6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 점검을 나가는 게 전부다.

사회연대은행의 경우 17명의 전문 상담사가 활동 중이지만, 우리미소금융재단의 경우 상담사가 4명밖에 없다. 최근 사회연대은행에서 2,000만원을 대출받은 이모(24)씨는 "음악학원 창업을 준비 중이었는데, 미소금융에서는 상담조차 받지 못했지만, 이곳에서는 사업 아이템이 좋고 일할 마음이 있다며 선뜻 대출해줬다"고 말했다.

미소금융중앙재단 측은 최근 대출조건을 완화할 방침을 밝혔지만, 여전히 관료적인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열매 맺는 재단 관계자는 "단순히 대출조건만 완화하면 도덕적 해이만 부를 수도 있다"며 "핵심은 상담과 관리 기능을 키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소금융의 '헛발질'이 계속될 경우 자생적으로 성장해온 단체들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사회연대은행 안준상 팀장은 "가뜩이나 재원이 정부주도 단체로 몰리고 있는데, 사후 관리가 안돼 도덕적 해이를 부를 경우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토양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김청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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