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를 봤어요
피벽돌양탄자가 아닌
통째로 온전한 레드를요
망고말보로바이올린과는 격이 달랐죠
레드는 뭐랄까, 사람 같았다니까요
살아 있는 레드, 호흡하는 레드
탱탱한 덩어리의 레드
찰흙처럼 퍼덕거리다가
콜타르처럼 흐르다가
멸치처럼 바짝 말라붙었다가
아직 죽기는 싫은지
왼쪽 심장이었다가, 당신의 온기를 동맥으로 밀어냈다가
온몸이 달아올라 헐떡거리다가
블루와의 원 나이트 스탠드였다가
10월에 퍼플 레인으로 쏟아지다가
질량 보존을 위해
수백만 개의 젖꼭지가 되었다가
애를 밴 섬바디였다가
태교에 좋은
달팽이관의 펑크록 사운드였다가
벨벳 골드 마인이었다가
카메라가 다가가면 용케 멈춰 버리는
대가리를 열고 가시를 겨누기 시작하는
애니바디, 에브리바디 어쩌면 노바디 레드는
때때로 식물원에 팔려 간 친구
튤립선인장아스파라거스를 생각하며 쓸쓸해질 줄 아는
레드는 뭐랄까,
광화문에 뿌려진 하인즈 토마토케첩이지요
● 낙타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납니다. 쌍봉이어야만 하는데, 단봉이었어요. 저 혹 속에 비상시에 마실 수 있는 물이 들어 있다지? '소년중앙' 같은 잡지를 읽고 알게 된 상식을 떠올리면서. 내가 처음 본 낙타라는 동물은 '스타워즈' 같은 영화 속에나 나올 것만 같은, ET보다도 더 괴상한 생명체였습니다. 특히 입과 혀는 정말 우스꽝스러웠어요. 자신이 얼마나 웃기게 생겼는지 낙타는 모를 겁니다. 짬뽕 같은 동물. 그래서 내게 동물원은 낙타가 사는 곳이지요. 지금도 그래요. 그런데 낙타를 보러 가면 항상 웃다가도 슬퍼지지요. 낙타의 눈 때문이에요. 그 눈, 자세히 들여다보신 적 있으신가요? 광화문에 뿌려진 해직자의 눈빛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남은 건 그 눈빛 하나뿐인 것 같은, 뭐 그런 느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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