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8일 정몽준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은 여권의 세종시 갈등을 한층 깊고 넓게 만들 게 분명하다.
당의 2대주주가 1대주주(이명박 대통령) 편에 선 당 대표를 공격한 형국은 친이계_친박계 간의 갈등을 더욱 확산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 수위는 유례 없이 높았다. 특히 박 전 대표가 "(당론 변경으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에 대해 책임지실 문제"라며 정 대표의 '책임론'까지 언급한 것은 그동안의 발언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한 반대를 넘어 현 지도부의 책임 소재까지 거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 대표가 지난 14일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를 인용해 박 전 대표를 우회 비판하자 박 전 대표가정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정 대표는 당시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미생에게는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에게는 진정성이 없었다"며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당 지도부가 수정안 당론 채택을 시도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지도부를 향해 강력히 경고하면서 친박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정 대표 정면 비판은 의도와 상관없이 복합적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당장 지도부 교체를 위한 조기전당대회 실시 여부와 연결된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갈등을 계기로 지도부 교체론을 본격적으로 펴는 상황이 온다면 조기 전당대회에 직접 출마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 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이정현 의원은 "조기 전대와 연결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지만 복잡한 상황 전개를 배제할 순 없다.
친이계 주류와 정 대표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여권 주류는 일단 세종시 여론전을 지속한다는 방침이지만 박 전 대표의 강경 입장을 감안할 때 당내 대화와 토론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 대표가 이날 박 전 대표의 비판에 대해 "경우에 맞춰 찬성, 반대 토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응수한 것에서도 이런 기류가 담겨 있다.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친이계_친박계가 정면 충돌하는 '치킨게임' 양상이 심화할 경우 당이 분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박 전 대표와 정 대표간 관계에 초점을 맞춰 '초등학교 동창의 우정은 이제 없어졌다'는 말도 나온다. 장충초등학교 동기 동창인 두 사람이 차기 대권을 놓고 다퉈야 하는 잠재적 경쟁자인 만큼 이번 충돌을 계기로 명백히 대척점에 섰다는 뜻이다.
정 대표가 지난 해 9월 취임한 뒤 두 사람은 전화 통화를 하거나 회동하기도 했으나 주요 현안에 대해 결이 다른 언급을 하면서 경쟁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직접적인 공격을 자제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충돌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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