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이니까 그 해도 물론 호랑이 해였다. 1986년 병인년(丙寅年)을 앞둔 연말, 데스크에서 뜻밖의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신년특집에 쓸 화끈한 얘깃거리가 필요하니까 강원도 오지를 다 뒤져 호랑이 흔적을 찾아와!" 아니, 우리나라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게 언제 적인데 이 무슨 황당한 지시란 말인가. 어쨌든 올챙이 기자 처지에 감히 이의를 달 수는 없는 터. '혹시 그래도 인적 없는 산 속에서 진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딴에는 호신용이랍시고 새파랗게 날 선 대형나이프까지 준비해 다리에 질끈 묶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길을 떠났다.
■ 오죽하면 (훗날 음란비디오가 나오기 전까지) 아이들한테 마마만큼 흔하고 무서웠던 게 호환(虎患)이었을까. 구한말 경복궁에까지 뛰어들 만큼 도처에 흔했던 호랑이가 일제 때 완전히 사라졌음은 다들 아는 대로다. 기록을 뒤져 1922년, 24년, 또 1940년대 초까지도 생존했다는 등 멸절시기나마 연장해보려는 노력들만 안쓰러울 뿐이다. 1980년에는 모 신문이 '야생호랑이 발견!'이라고 흥분해 1면에 실은 사진이 어린이대공원 것으로 밝혀진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니 취재 길에 별 기대가 있을 리 없었다. 데스크의 객기나 원망하며 구시렁댈 밖에.
■ 그런데 세상에! 정말로 호랑이가 있었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가며 첩첩산중에서 찾아낸 외딴집마다 호랑이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엊그제 휙 지나는 걸 똑똑히 봤지." "밤새 호랑이 울음에 소가 저렇게 넋이 나갔어." "저기 솥뚜껑만한 발자국 안 보여?" 기력 좋았을 때 호랑이와의 한판 대결은 노인들 사이에선 어릴 적 콩서리만큼이나 흔한 경험이었다. 할머니들은 연신 "맞아, 에구 무서워"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 분들에게 호랑이는 여전히 현존하는 삶의 동반자였다. 물론 젊은 외지인에겐 아무것도 들리거나 보이지 않았지만.
■ 호랑이와 더불어 살며 그 힘과 용맹을 닮고 싶어했어도 실제 남들이 우리를 호랑이 급으로 봐준 건 1980년대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세계가 떠오르는 신흥공업국 한국을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묶어 아시아의 호랑이(또는 용)로 치켜세웠으니까. 그러다 최근 원전 수주 싸움에서 패한 프랑스 언론에서 오랜만에 호랑이 소리를 다시 들었다. 호랑이 해 벽두에 때맞춘 덕담처럼 들려 자못 반가웠다. 어지러운 국내외 현안에서 벗어나 잠시 한가한 추억에 빠져본 연유다. 올해는 정말로 나라의 기운이 호랑이 기세로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한 해가 되길.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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