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정오 홈플러스 영등포점. 주부 한경숙(49)씨의 유난히 큰 카트가 눈에 띈다.
플라스틱 상자를 6개나 얹을 수 있는 카트는 디지털 단말기까지 갖췄다. 단말기의 상품 목록을 꼼꼼히 확인하며 쌀과 생수, 고추장 등 20여가지 생필품을 재빠르게 챙긴 한씨는 카트를 이끌고 계산대가 아닌 정육 코너 뒤편의 'E-커머스' 부서로 뛰어 간다.
이 매장에는 한씨와 같은 옷차림으로 쇼핑을 하는 여성이 20여명에 이른다.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 장보기를 대행해 주는 이들은'피커(picker)'다.
'혈투'로 표현되는 최근 대형마트 업계의 가격 경쟁의 배경에는 '업태의 성장 정체'라는 난제가 있다. 자연히 업계는 가격 차별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에도 분주하다. 특히 이들이 올해 주목하는 '블루오션'은 온라인 서비스의 강화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터넷 주문 고객의 장보기를 대행하는 '피커'가 대형마트 업계의 유망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쇼핑몰의 배송 거점이 물류센터인 것과 달리, 대형마트의 온라인 구매는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삼는다. 따라서 주문이 접수되면 전담 직원인 피커가 매장 진열 상품을 '고객이 쇼핑하듯' 카트에 담는다.
최근 롯데슈퍼 등 다양한 유통업체들이 '인터넷 구매 당일 배송'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매장 배송 시스템 덕분이다.
2000년대 초반 일찌감치 피커 제도를 도입한 홈플러스는 현재 총 114개 점포 중 46개 매장에서 피커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46개 점포의 피커는 지난해 2배로 늘어 무려 30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이 업체의 온라인(www.homeplus.co.kr) 매출이 100% 이상 늘어난 데는 이들의 공이 컸다. 오전 8시30분에 업무를 시작해 2시간30분씩 총 세 차례 장을 보는 게 이들의 일과다.
롯데마트는 국내 69개 점포 중 현재 영등포, 구로, 중계, 서울역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총 18개점에서 인터넷 '장보기몰'(www.lottemart.com)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각 점포별로 3~5명의 피커가 장보기를 대행한다. 지난해 2월에는 전국 배송이 가능하도록 전국택배몰을 오픈했으며, 올 하반기까지는 근거리 배송이 가능한 점포를 10여개 추가하고 점포별 인원도 1~2명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피커의 활동이 대형마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장보기 서비스인 'e수퍼'(esuper.ehyundai.com)를 운영하는 현대백화점은 11개 점포 중 9개 점포에서 피커를 볼 수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3년간 e수퍼의 매출이 매년 30~50% 증가하고 있어 점포당 10~12명인 피커를 다음달부터 점포별로 2명 정도 늘릴 계획이다.
홈플러스 영등포점의 피커로 일하는 마규리(49) 선임은 "서비스 초창기에 무게가 많이 나가는 생수, 쌀 등을 중심으로 구매가 이뤄진 것과 달리 최근에는 간편 조리 식품 위주의 소량 구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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