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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재토끼 차상문' 낸 소설가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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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재토끼 차상문' 낸 소설가 김남일

입력
2010.01.18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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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남일(53)씨가 세 번째 장편 <천재토끼 차상문> (문학동네 발행)을 발표했다. 2007년 출간한 소설집 <산을 내려가는 법> 이후 3년 만이고, 장편으로 따지면 식민지 조선 민중의 질곡을 그린 7권짜리 대하소설 <국경> 완간 이후 14년 만이다.

근래 한국 문단에 장편소설이 백화난만하는 가운데서도 김씨의 신작은 단연 눈에 띈다. 주인공 차상문부터 그렇다. 그는 토끼의 외양을 가진 '토끼 영장류' 남성이다. 외딴 시골학교 교사였던 어머니가 오빠를 수사하던 공안경찰에게 겁탈 당하면서 그를 뱄다. 어머니가 독한 양잿물까지 마셨지만 그는 모체 밖으로 귀를 먼저 내밀며 기어이 세상으로 나온다. 비상한 두뇌와 겁 많은 성격을 지닌 그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폭력을 남의 일로 여기지 못한다.

1956년생인 차상문이 9ㆍ11테러가 일어난 2001년까지, 현대사 반세기의 갖은 사건들과 부대낀다는 설정 역시 요즘 한국소설에서 보기 힘든 스케일을 자랑한다. 소설은 차상문의 생애와 그 주변에 무수한 에피소드를 배치하며 남북관계, 민주주의, 외국인 노동자, 성 문제 등 굵직한 주제들을 섭렵한다. 예컨대 차상문이 미국 유학 중 한 여성 토끼에게 품은 연정이 그녀가 '북조선 여자'란 사실을 안 순간 무너지는 장면을 통해 레드 콤플렉스 문제를 건드리는 식이다. 흥미로운 가십 수백 건을 수집해 작품 곳곳에 변형 배치한 작가의 노력 덕분에 이 소설은 판소리 사설 혹은 걸쭉한 가담항설처럼 읽는 맛이 좋다.

소설은 미국에서 교수로 자리잡고 삶의 평온을 찾는 듯싶던 차상문이 쿠나바머라는 이름의 은자를 만나면서 반전한다. 교수직을 버리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고국에 돌아온 그는 세 여성과 '꿈꾸는 영장류'란 조직을 결성해 모든 종(種)의 연대를 제안하는 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우연히 TV에서 인간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 오리떼가 산 채로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을 보고 다시 절망한다. "인간이… 과연 진화의 종착지일까요?"(273쪽) 그가 잠적한 뒤 국제결혼업체, 실험동물 공급업체 등엔 '제발 쿵쿵거리지 말아 달라'는 요구를 담은 폭탄 상자가 배달된다.

1983년 등단해 줄곧 사회성 짙은 작품을 써왔던 김씨는 이번 소설에서 그간의 문제의식을 유지하면서도 형식 면에선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15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김씨는 "기술 발전에 반대하며 우편물 폭탄 테러를 자행했던 미국의 천재 수학자 유나바머로부터 모티프를 얻었다"며 "예전처럼 정색하는 대신 풍자적으로 주제를 다루려 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던 이 소설은 김씨가 2007년 토끼를 의인화한 콩트를 쓴 것을 계기로 급진전됐다. 김씨는 "주인공을 토끼로 바꾼 뒤 2008년 10월부터 4개월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며 "구들이 무너진 강원 홍천의 냉골에서 침낭을 뒤집어쓰고 자나깨나 즐겁게 썼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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