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우리 국회가 하는 행동을 보고 실망하지 않는 국민이 있을까? 아마 국회의원들뿐이리라. 국회가 이렇게 파행을 보이는 것은 대의정치의 실패를 예고한다. 대의정치라는 것이 그 나라의 정치문화와 풍토 속에서 성숙되는 것인 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노력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외형상 국회와 국회의원이 있어 대의정치를 하는 것 같이 보여도 실제는 정치적 이익집단들이 각자의 사익을 추구하는 것에 머물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의정치는 패거리 정치로 전락한다.
패거리 정치로 전락
오늘날 국민의 참여의식이 높고 시민사회의 지식과 정보가 정부 영역의 그것과 비견하거나 상회하기 때문에 국민이 참여하지 않는 대의정치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의 모습도 띠고 심의민주주의의 양상도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을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것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사익의 각축장에서 결정하는 것이어서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논란이 있는 정책마다 국민이 직접 나서서 결정하는 것은 대의정치의 실패일 뿐 아니라 공동체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정부에서도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나이브한 길거리 정치를 추구하다가 민주주의의 기반만 약화시켰다.
풍경 #1: 현재 법률로 제정되어 있는 세종시 문제를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국민투표로 해결하려는 것 역시 대의민주주의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세종시 입법문제는 헌법 72조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사항이 아니어서 국민투표는 위헌이기도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보여준다.
풍경 #2: 18대 국회에서도 근절되지 않는 국회 폭력은 후진국중의 후진국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는 대만 의회에서도 거의 없어졌다. 일본 의회에서는 폭언하고 명패를 던진 의원이 권한정지를 당한 사건이 1950년대에 있었으나 이제는 사라졌다. 오늘날 일본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의원 자격이 없다고 보고 유권자들이 찍어 주지를 않는다고 한다.
풍경 #3: 걸핏하면 의원직을 사퇴한다며 사퇴서를 내던지고 의정 활동을 하지 않는다. 사퇴서가 수리되어야 의원직이 박탈되는데 의장이 사퇴서를 수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이런 행동을 한다. 엄청난 세비를 받았으면 일을 해야 할 텐데 직무를 유기하고 놀고 먹는 셈이다. 의원이 세비를 받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행동은 실로 대의정치의 부정이다.
풍경 #4: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추미애 위원장이 당론과 배치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하여 민주당에서 징계를 한다고 나서고 추 위원장은 장문의 반박서를 내는 소동을 벌였다. 과거 패거리 정당 시절에 당론과 당수의 지시를 어기는 투표를 하면 반란표라고 공격 하던 장면이 다시 연출된 것이다.
대의정치에서 정당 소속의 국회의원도 국민의 대표자이지 정당의 하수인이 아니다. 오히려 대의정치에서는 국민 전체의 이익과 국익을 고려해 반대당의 입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국회의원은 당론을 떠나 표결해야 한다. 이른바 교차투표(cross-voting)다.
국민 손으로 정치혁명 할 때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며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헌법 규정이 있는데도 교차투표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때문에 2002년에는 국회법 114조의2를 신설하여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 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못 박았다. 이런 판에 민주당에서 징계한다고 야단법석을 벌인 것이다.
대의정치에서도 국민이 주인이다. 선출되고 나면 의원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대의정치가 아니다. 이제는 국민의 손으로 한국 대의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혁명을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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