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사동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금속이라는 공통 테마로 두 가지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금과 은을 소재로 한 고미술품을 모은 '영원을 꿈꾼 불멸의 빛, 금과 은'전과 철조망으로 공간을 재구성한 설치작가 지니 서의 '금속 풍경_울림'전이다. 별개의 전시지만 삼국시대의 금관과 고려불상에서 출발해 현대미술로 마무리되는 흐름이 뜻밖에 자연스럽다.
국보 1점과 보물 9점이 나온 '금과 은'전은 금동대세지보살좌상(金銅大勢至菩薩坐像ㆍ보물 1047호)으로 시작한다. 어두운 전시장 입구에 놓인 16㎝ 높이의 이 자그마한 고려불상은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금으로 마무리된 불상이 부처의 모습과 지혜가 영원히 빛남을 상징한다면, 금가루와 은가루를 개어 불교 경전을 옮겨 적은 사경(寫經)은 부처의 말씀이 잘 드러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 자를 쓰고 한 번 절하는 일자일배(一字一拜)의 지극한 정성이 금빛 사경 속에 배어있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ㆍ국보 211호)은 법화경을 흰 닥종이에 먹 글씨로 베껴 쓴 것으로, 각 권 첫머리에 책의 내용을 요약해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쪽물을 들인 감지(紺紙)를 이용한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ㆍ보물 752호) 권34의 변상도는 한층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국내에 몇 점 남지 않은 고려불화인 지장사왕도(보물 1048호)에서도 극락왕생의 염원을 담은 금빛을 만날 수 있다.
5~6세기 금제 귀걸이 등 뛰어난 금 세공 기술을 보유했던 신라의 각종 장신구들은 신분과 권력을 상징하는 금의 면모를 보여주고, 조선시대 여인들의 비녀와 노리개, 떨잠 등 은을 소재로 한 생활용품은 세련미가 넘친다.
동선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지니 서의 전시장에 닿는다. 금속, 소리, 공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기획된 이 전시는 철조망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구성한다. 그리고 철조망 속 공간들은 13세기 고려시대의 금속 유물들을 품고 있다. 마음의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청동 범종, 세상을 깨우치는 진리를 상징하는 쇠북인 반자(飯子) 등이다.
수없이 교차되는 철조망의 선을 따라 점점 좁아지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마지막에는 공중에 매달린 청동거울과 마주하게 된다. 적막한 고요 속이지만 금속들이 부딪혀 생기는 은은한 울림이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3월 28일까지. 관람료 8,000원,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은 무료 관람할 수 있다. (02)541-3523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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