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기도 홍보 안하면 도태" 주정부서 90% 지원
이탈리아 경제의 핵심도시인 밀라노에서 남동쪽으로 80㎞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크레모나(Cremona)'. 인구 8만의 작은 도시인 이곳의 단출한 중앙역에서 내려 시 중심의 성당까지 20분 정도를 걷다 보면 거리 곳곳 악기를 제조하는 장인들의 공방(工房)을 발견할 수 있다.
5~6평 남짓한 작은 규모의 공방 앞에 장인들이 직접 제작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을 구경하기 위해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 모습도 눈에 띈다. 처음 방문한 도시였지만 이곳이 현악기 제조로 유명한 도시라는 것을 눈치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레모나는 바이올린의 창시자로 알려진 안드레아 아마티와 그의 수제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고향으로 이미 400여년전인 16세기부터 현악기 제조의 메카의 명성을 쌓은 곳. 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기까지 크레모나도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19세기 이후 독일과 미국 등으로 유능한 현악기 제조 인력이 빠져 나가 사양화의 길을 걷기도 했고, 최근에는 값싼 중국산 제품의 등장과 모조품의 범람으로 위협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크레모나는 이러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터득한 산ㆍ학ㆍ관의 협력체계를 통해 오늘날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산(産)-산업의 중심축을 이루는 조합
크레모나 현악기 제조 산업의 중심엔 크레모나 현악기 수공업 조합'을 주축으로 한 지역 상공회의소가 있다. 시 중심에 있는 '콘쏘르찌오 리우타이'(CONSORZIO LIUTAI)라는 전시장에서 만난 상공회의소 부회장인 프란체스코 토토씨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금새 시장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익혀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워 아시아와 유럽의 국가들을 매년 방문, 크레모나의 현악기 산업을 적극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현재 상공회의소에 등록된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조 장인들은 모두 147명. 지역 상공회의소는 전 세계를 찾아 다니며 이들 장인들의 실력을 홍보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 크레모나 장인들의 악기에만 붙는 보증서 관리를 통해 모조품의 범람을 막고 전통을 지켜가며 오늘날의 명성을 이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관(官)-롬바르디아주의 지원
상공회의소 중심의 이런 사업들이 가능한 이유에는 크레모나가 속해 있는 롬바르디아 주정부의 지원도 빼 놓을 수 없다. 토토씨는 "현재 주에서는 해외 홍보 사업비용의 90%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절차나 인ㆍ허가 과정에 있어서도 지역 상공회의소 활동에 최대한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며 "주정부의 이러한 지원이 지역상공회의소의 활동에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주정부는 3년마다 전통적인 크레모나만의 기술을 이용한 기능인만 참가할 수 있는 국제현악기수공업자 대회를 지원하고 있다. 또 매년 10월 전 세계의 유명한 음악 관계자들이 모이는' 몬도무지카'라는 행사 개최에도 주 정부 지원이 빠지지 않는다.
학(學)-교육 통해 위기 돌파
크레모나의 전통을 이어가는 또 다른 중심은 국제현악기제조학교다. 1938년 설립된 현악기 제조학교는 당시 유능한 장인들이 빠져나가 이 지역 현악기 제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통해 기능 장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설립 초기만 해도 10여명에 불과했던 학생 수는 현재 150여명에 달한다. 특히 이 중 절반 이상은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다.
스콜라리 지오르지오(58) 교감은 "과거 19세기 말까지 도제 시스템을 통해 이어온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조 기술이 이제는 학교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통해 전수되고 있다"며 "지금은 많은 유학생들이 전 세계에서 찾아오면서 크레모나 전통방식을 세계에 전파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악기 제조 학교가 명성을 쌓고 미래의 장인들을 육성할 수 있는 데에는 '스타우프'재단 등 외부의 지원도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 지오르지오 교감의 설명이다.
작은 도시지만 긴밀한 산학관의 협력체계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전통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크레모나의 모습은 이탈리아의 수공업 산업이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가장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크레모나=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 명장 비숄리티씨 "장인이 만든 소리는 첨단 기술도 흉내 못내"
"변하지 않는 전통의 가치를 이어간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오늘날까지 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힘 입니다."
크레모나에서도 스트라디바리의 전통 제작방식을 가장 잘 재현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명장 프란체스코 비숄리티(80ㆍ사진)씨는 오랜 시간 한 분야의 장인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공방에서 만난 비숄리티씨는 이른 아침부터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두 명의 아들에게 작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전통의 기술을 체득하고 이어가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 비숄리티씨는"50년 넘게 이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며 "좋은 악기를 제작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최고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숄리티씨를 비롯한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조 명장들은 1년에 채 10개의 악기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전통과 품질로 승부하는 명장들의 바이올린 가격은 대당 2만 유로(한화 3,200만원)가 넘는 선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이들이 오랜 산고에도 최고만을 고집하며 결코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숄리티씨는 "최근에는 전통의 작업 기술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경향도 있어 안타깝다"며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는 스트라디바리의 악기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내는 것은 그의 기술이 시대를 떠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의 최첨단 과학 기술도 400여년 전 한 장인의 노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특히 기술을 이어가는 장인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눈 앞의 흐름을 따라가기 보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숄리티씨 역시 크레모나의 유능한 장인들이 빠져 나가 사양화의 길을 걸을 때부터 최근의 값싼 중국산 제품의 범람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를 줄곧 함께해 왔다. 이런 오랜 시간 동안 꿋꿋이 본인의 길만을 고집,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길게 보는 안목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명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명장의 길을 목표로 삼고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닌 이 길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명장으로 불리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진정한 명장이 되는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귀 기울여 볼만한 대목이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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