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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에 46m 벽화 '풍경의 알고리듬' 만든 추상화가 이상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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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에 46m 벽화 '풍경의 알고리듬' 만든 추상화가 이상남씨

입력
2010.01.1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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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을 만들어 덧붙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원래 저 벽면 속에 뭔가가 들어있었는데 정으로 쪼개서 그것을 밖으로 드러나도록 한다는 느낌이 들었죠. 나와 저 벽 사이에 묘한 인연이 있었던 거겠죠."

뉴욕에서 활동하는 추상화가 이상남(57ㆍ사진)씨가 경기 안산의 경기도미술관 로비 상부 벽면 전체를 길이 46m 세로 5.5m의 거대한 벽화로 메웠다.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눈 앞 가득 펼쳐지는 흑백의 추상화는 시선이 닿는 곳 바깥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직선과 원, 곡선 등 압축적이고 정제된 기하학적 형상들이 엉켜 속도감을 빚어내는 이씨의 '풍경의 알고리듬' 시리즈다.

1층에서는 벽화를 올려봐야 하지만 2층에서는 눈높이가 맞춰진다. 가까이서 그 질감을 느껴볼 수도 있다. 내부가 유리로 된 미술관 곳곳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이 벽화는 마치 미술관과 하나가 되어버린 듯하다. 겉으로 노출된 철제 파이프마저도 벽화와 함께 조화를 이룬다. 각기 크기가 다른 66개의 패널을 1㎜의 오차도 없이 쪼개고 다시 퍼즐 맞추듯 이어붙인 이 작업을 두고 이씨는 "광기와 열정이 없으면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경기도미술관으로부터 작품을 구입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미팅을 위해 미술관을 방문했던 이씨는 하얗게 비어있는 시멘트 벽을 보는 순간 "여인을 사랑하듯 꽂혔다"고 한다. 그는 "저 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을 사지 말고 대신 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미술관 측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용인의 폐공장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업에 착수하면서 그가 마음먹은 것은 "5초면 시선이 돌아가버리는 장식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 규모가 크다고 해서 공간을 짓누르지 않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미술관 건축도면을 보면서 작업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재료의 변화를 시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소 그는 캔버스나 패널에 옻 혹은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기를 수십번 반복해 바탕 화면을 만든 뒤 기하학적인 선과 원의 이미지들을 그려 넣는다. 이번에도 이런 노동집약적 작업 방식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과 자동차용 도료를 재료로 택했다. 무게감을 줄이기 위해서다. 옻으로 한 작업이 그윽하고 감성적이라면 이번 작업은 가볍고 경쾌하다. 또 현란한 색깔의 홍수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흑백으로 작업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씨는 뉴욕타임스와 미술전문지 '아트 인 아메리카' 등에 소개되며 독특한 회화적 언어를 가진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대신 국내 활동은 뜸했다. 2008년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연 전시가 11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었을 정도. 스스로 "공간과 관람객만 있으면 어디든 천막을 걷어 떠나는 유목민"이라고 여기지만, 올해 중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것을 계기로 한국 학생들에게 뭔가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번 작업이 그에게 더욱 뜻이 깊은 이유다. "이번 작업을 통해 늘 고민하던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것 같습니다. 뉴욕으로 떠날 때는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곳에서 에너지를 얻은 셈이죠."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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