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인 진술서 등의 증거 채택 여부를 놓고 검찰의 강한 반발을 샀던 뇌물사건재판에서 항소심도 "진술거부권을 고지 하지 않은 채 이뤄진 진술조서는 증거가 될 수 없다"며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조병현)는 국정관리시스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L사의 로비스트 역할을 한 고교동창 윤모씨에게 금품을 제공하도록 L사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뇌물)로 기소된 국무조정실 부이사관 정모씨와 서기관 박모씨에 대해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정씨에게 부탁해 L사의 사업 수주를 돕겠다며 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 등으로 기소된 윤씨에게는 원심보다 추징금 450만원이 추가된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1억2,670여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의 혐의는 2007년 국무조정실 전산시스템 구축 사업을 L사가 수주하도록 윤씨가 정씨에게 힘을 쓰고, 윤씨가 도움을 준 대가로 돈을 챙길 수 있도록 L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윤씨를 처벌하면서도 정씨와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검찰이 제출한 이들의 진술서와 영상녹화 속기록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 검찰은 정씨와 박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다가 이들의 혐의를 발견해 기소했고, 참고인 진술 등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기소되자 "(피의사실에 대한) 진술거부권을 (검찰이)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인 진술은)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참고인은 피의자와 달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라면 진술서, 자술서라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진술거부권을 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영상녹화 속기록에 대해서도 "서명날인이 없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에서도 같은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공판중심주의는 수사기관 등 어느 단계에서 수집된 증거라도 법정에 제출돼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며 항소했다.
검찰은 또 항소이유서에서 윤씨에 대한 양형이 부당하다며 "연령 등이 감경요소로 작용했는데 사법불신은 자의적 양형에서 비롯되고, 그래서 브로커나 전관예우 등의 말이 생겨난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윤씨의 금품수수액을 450만원 더 인정하고도 징역형은 그대로 두고 추징금만 그만큼 추가했다.
검찰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판결 대로라면 검찰은 목격자 등 모든 사람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라는 것인데, 이는 도리어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인권침해"라며 상고할 뜻을 밝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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