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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최인호와 이해인

입력
2010.01.16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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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1945년생)다. 글을 쓴다. 가톨릭 안에 있다. 아프다.

일종의 강박이다. 이런 피상적 조건들로 두 사람을 하나로 묶으려는 생각. 당사자들이 먼저"억지"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소설가 최인호 씨가 35년 동안 월간 <샘터> 에 써오던 자전적 소설 <가족> 연재를 중단했다는 소식에 떠오른 사람이 이해인 수녀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 최근 동시에 출간된 최씨의 에세이집 <인연> 과 이 수녀의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 , 그 안에 담은 글과 마음과 모습이 닮았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솔직히 <인연> 을 읽어보기 전까지 난 그들의'인연'을 알지 못했다. 최인호 씨에게 이해인 수녀는'종교의 고귀함을 알고도 인연이 닿지 않아 가까이하지 않던 시절, 유일하게 알고 있는 성직자'였다. '시집을 통해 발견한 샘물 같은 맑은 영혼'이었다. 1985년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최인호 씨에게 이해인 수녀는'평생 간절히 남을 사랑하는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은 소녀'였고, 이해인 수녀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무를 위해 저녁기도 때마다 '최인호'라는 이름을 떠올리겠다고 말했다.

암까지 함께 앓는 동갑의 길동무

이해인 수녀가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지금 자신과 똑같이 병을 앓고 있고, 그 고통의 시간을 거치면서 더욱 아름답고 깊어진 마음과 글을 보여주고 있는 동시대 동무를 위해 기도 중에 그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최인호씨는 '인연'이란 이처럼 내가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 그 무언가가 되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 서로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기에 크고 작음이 따로 없이 소중하다고 했다.

<인연> 을 읽으면서 가족, 친구만큼 크고 밝은 별빛은 아니지만 그와의 소중한 인연을 되새긴다. 개인적 고통과 울분과 외로움으로 고통 받고 있던 4년 전, 그는 다가와 대부(代父)가 되어 주었다. 왜 그때 작가와 기자로만 알고 지내던 그를 찾았는지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길은 없다.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삶과 신앙에 대한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따금 '또 다른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세를 받는 날, 그는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고 속삭였다. "이제는 마음 속의 미움과 억울함, 집착을 모두 버리게. 그래야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깊이 담을 수 있네."

30년 전 최인호씨가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그도 오만과 편견과 비난과 악의로 가득 찬 마음의 방을 치워야만 했다. 그 깨끗하게 빈 자리에 하느님과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채우려 했다. 회갑을 막 넘기고 나서 그는 이제 더 이상 보고 싶다고 여기저기 불러나가는 화초기생, 유명한 동물원의 사자, 화려한 행사장의 화환은 그만두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글만 쓰고, 글로 말하겠다는 것이었다. 2006년 월드컵대회 특집판에 실을 격문을 부탁하러 간 자리에서였다.

병이 생기고, 치료를 하면서, 요양을 위해 <가족> 연재를 중단하면서 외부와의 연락을 일절 차단한 것도 그에게는 일종의 비움이다. 그의 근황을 가족으로부터, 뉴스로 들을 때마다 찾아가 손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의 비움을 지켜준다는 뻔뻔한 변명으로 그의 책을 읽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인연은 글이다. 그는 그것을 죽음의 자리에 누워 영원히 눈을 감을 때까지 버리지 않고, 가난한 세상에 작은 위로의 눈발이 될 수 있도록 걸어가겠다고 했다.

글로 맺은 인연 아름다운 완성을

그 길에 그는 병을 동무로 삼았다. 이해인 수녀도 그렇다. 두 사람 모두 병과 친해지길 빈다. 친하면 상대를 해치지 않는다. 어느 날인가는 인연이 다해 슬며시 물러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오랫동안 이해인 수녀는"삶 자체인 시를 쓸 것"이고, 최인호 씨는 마음 속에 오래 간직해온 예수의 생애에 대한 소설을 쓸 것이다. 최근에야 국내에 번역 소개된 러시아 미하일 불가코프의 불후의 명작 <거장과 마르가리타> 를 훨씬 뛰어넘는 소설을 읽고 싶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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