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 발행ㆍ359쪽ㆍ1만1,000원
소설가 권지예(50)씨의 세 번째 장편으로, 2008년부터 1년여 소설 전문 계간지 '자음과모음'과 인터파크 문학 웹진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특유의 서사적 구성과 묘사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오던 권씨는 이 소설에서 운명적 사랑이라는 고전적 주제에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문학적 요소를 가미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권씨는 2008년에도 신사임당의 생애를 모티프로 한 역사소설 <붉은 비단보> 를 두 번째 장편으로 내놓으며 이야기의 힘을 앞세우는 문학적 변신을 예고한 바 있다. 붉은>
소설은 요가 강사 진서인과 프리랜서 사진작가 강선우라는 30대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다. 우연한 계기로 만난 이들이 격렬한 사랑을 나누면서 여느 연애소설처럼 진행되던 내용은 중반 이후 분위기를 일신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서인에게 거듭 오는 불길한 이메일, 베일에 싸인 선우의 정체, 선우를 짝사랑하던 여대생의 실종 등이 꼬리를 물면서 두 연인을 둘러싼 총체적 진실이 퍼즐 조각 맞추듯 서서히 드러난다. 아울러 선우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과거 두 사람이 맺은 악연이 드러나면서, 서인에게 이 사랑이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인지도 밝혀진다.
능란한 솜씨로 퍼즐 조각을 다루며 독자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던 작가는 후반부에서 다시금 소설의 속도를 늦추고 '운명적 사랑은 과연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인이 치명적 사랑 앞에서 고뇌하다가 내리는 결단은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대변한다. "선우씨. 당신이 살인자라도 정신병자라도 악마라도 난 당신을 사랑한 거 후회 안해. 아니 그건 분명해. 난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352쪽)
작가 권씨는 "사랑에 대한 회의를 줄곧 작품 주제로 삼다보니 '어긋난 사랑의 대가'로도 불렸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운명적 사랑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젊은 세대에게 사랑의 소중함과 신비로움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외국의 장르소설을 탐독하고, 다중인격장애를 앓는 선우를 묘사하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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