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발행ㆍ128쪽ㆍ7,000원
순도 높은 서정의 시인 위선환(69)씨의 네 번째 시집이다. 새들의 활공을 매혹적인 시어로 포착한 표제작으로 널리 읽힌 시집 <새떼를 베끼다> 이후 3년 만에 61편의 시를 묶었다. 새떼를>
이번에도 그는 '하늘 밖'부터 '물바닥'에 이르는, 광활한 수직적 공간을 서정의 무대로 삼는다. '면도날을 사용한 듯, 머리 위 저어 높이에서부터 지평선 저어 너머까지/ 주욱 내리그은 칼금,/ 의/ 주욱 갈라진 틈새,/ 의/ 뒤쪽이 내다보이고… 가맣다// 며칠째 갠 날이다 아침에는 A4용지에 손끝을 베이었다'('하늘').
갠 하늘과 베인 손끝을 연결시키는 연기(緣起)적 상상력이 여러 시편에서 엿보인다. 종달새가 점으로조차 보이지 않게 높이 날아오른 후 지상엔 장마가 오고 가을이 지나간다. '내일은 추울 것이다. 배나무 뿌리와 가지와 가지에 얹힌 강줄기도 얼고 종달새는 하늘 밖에서 얼 것이다.'('두근거리다'에서)
'스미다'와 '번짐'은 존재와 관계에 대한 그의 통찰이 담긴 인상적인 시편이다. 시인은 비오는 밤 추녀 밑에서 발견된 새의 주검을 '겨우 비 젖지 않은 추녀 밑 맨바닥에 새가 이미 스민 자국만 축축하게 젖어 있던 일'('스미다'에서)로 표현한다. 그에게 죽음은 생과 사의 격렬한 단절이 아닌, 다른 시공간으로의 스밈인 것이다. 또한 인연은 '꼭 감은 눈시울 밖으로 자라나는 꼭 감긴 눈시울 그늘'처럼, '닳고 벌어진 손톱 밑에서 자라나는 닳고 벌어진 손톱 그림자'('번짐'에서)처럼 번지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인식은 위씨가 인생의 황혼길을 걷는 노년이란 사실과 관계 깊은 듯하다. 이번 시집엔 '천장(天葬)' '수장(水葬)'을 비롯,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긴 작품이 여럿 수록돼 있다. 1960년 용아문학상 초대 신인상 수상자로 등단하며 미당의 인정을 받았던 그는 여의치 않은 창작활동과 생활고로 1971년 공무원이 되면서 오랫동안 시단을 떠나 있었다. 2001년 첫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를 내며 작품 활동을 재개한 그는 "언어를 섬세하게 쓰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나무들이>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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