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지음ㆍ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발행ㆍ328쪽ㆍ1만2,000원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201쪽)
20세기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조지 오웰(1903~1950ㆍ사진)의 <1984>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며 억압하는 이념을 전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때 전체주의란 스탈린주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탈린주의와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을 억압하는 파시즘에 대해서도 오웰은 강력한 반감을 품고 있었다.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 (1937)을 쓴 1930년대 중반 영국은 불황의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던 시기. 노동계급은 실업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중산층 역시 빈곤계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유럽을 휩쓸던 파시즘의 물결은 순식간에 이들을 집어삼킬 태세였다. 위건>
오웰은 이 책에서 이런 상황을 우려하며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고 진보적 대안을 제시한다. '정치작가'를 선언한 오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책이지만 한국에서는 1980년대초 번역됐다가 절판됐었는데, 올해 오웰 60주기를 맞아 다시 번역돼 선보였다. 반 파시즘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을 탈고한 뒤 오웰은 파시즘과 맞서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오웰이 위건, 리버풀, 셰필드 등 영국 북부의 탄광 지역을 다니며 탄광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기록한 르포가 1부다. 2부는 대중과 유리된 당시 영국 사회주의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에세이 모음이다. 탄광노동자들과 함께 두 달 동안 싸구려 여인숙에 머물며 식량난, 주택난 등에 시달리는 그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1부는 1930년대 영국사 연구자들이 자주 인용할 정도로 묘사가 생생하다. 지하 수백 미터의 갱도에서 몇시간 동안 허리를 구부린 채 채탄 작업을 하는 탄광노동자들의 노역을 직접 체험하는 장면, 벌레가 우글거리며 바닥이 썩고 벽에 금이 가는 집이지만 그곳에서나마 쫓겨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노동자 가족의 현실 등을 오웰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한다.
2부는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오웰의 시각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당시 이 책을 출판한 진보적 성향의 출판사는 저자의 동의 없이 일부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서문을 덧붙여 출간했을 정도로, 오웰의 시각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오웰의 문제의식은 "사회주의에는 반감을 느끼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왜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반감을 품고 있는가?"로 요약된다. 오웰에 따르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연대' 혹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같은 용어를 입에 달고 다니거나, '근육질에 작업복 차림의 짓밟히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노동자계급을 도식화하고 신비화하는 사회주의자들의 태도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파시즘의 위협 앞에 연대해야 할 중산층과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해악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오웰의 생각이다.
70여년 전 영국 사회가 배경이지만 이 책은 자연스럽게 21세기 한국사회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경제위기 여파 속에 사회ㆍ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강경한 우파 정권이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는 현실, 대중들과는 유리된 언어로 공론을 일삼고 젠체하는 태도로 인심도 권력도 잃은 이른바 '강남좌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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