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월스트리트에 칼을 뽑아들었다. 미국 금융회사들의 탐욕과 뻔뻔스러움에 대해 수차례 구두경고를 했으나 먹혀 들지 않자 마침내 물리력을 통한 제재에 나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4일 백악관에서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회사들을 살리기 위해 투입한 수천억달러의 구제금융자금에 대해 "마지막 동전 한 닢을 회수할 때까지" 수수료(fee)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상원 지도부도 수수료 부과계획을 "환영한다"며 조속히 이에 대한 입법절차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수수료는 '금융위기책임 비용'이란 명목으로 10년간 연 15%의 이율로 부과된다. 대상은 자산규모 500억달러 이상의 50대 대형 금융회사다. 계획대로라면 10년 동안 총 900억달러 이상을 거둬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에 투입했다 아직 돌려받지 못한 1,170억달러의 구제금융자금의 대부분을 수수료만으로 거의 상쇄할 수 있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잇따르는 금융회사들의 대규모 보너스 지급에 대해 "역겹다"고 비난하며 "국민의 돈으로 목숨을 부지한 금융회사들이 엄청난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은 나의 결의만 더 단단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실업률이 10%를 넘어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서민경제가 추락하는 와중에 금융회사들이 수백만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데 대해 국민의 반응도 싸늘하다.
도미니크 스트로브-칸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미국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정치적 역량이 있음을 보여줬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와 공화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공화당은 "수수료는 결국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저축예금에까지 전가되는 세금"이라며 "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금융회사들은 구제금융을 다 갚았거나 구제금융을 아예 받지 않은 금융회사들에까지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치논리에 의한 징벌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월스트리트 전체가 구제금융의 혜택을 받아 살아났고, 금융위기를 부른 무분별한 행태도 전체 금융권이 져야 할 책임"이라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금융계에서는 이번 수수료 부과로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AIG 같은 초대형 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달 초 내년 연방 예산안을 발표할 때 수수료 부과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표명할 계획이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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