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아이에게 옷 한 벌 사주려고 모처럼 쇼핑에 나섰다.
아이 옷을 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1, 2만원대부터 10만원 가까이 하는 옷까지 가격도 천차만별, 디자인도 부지기수라 도무지 뭘 골라야 할지 난감하다. 그런데 이번엔 특히 뭇 엄마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옷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감온(感溫) 유아복'이다.
감온 유아복은 희한하게도 아이의 체온이 37도가 넘으면 옷에 그려진 무늬가 사라진다. 덕분에 초보 엄마나 체온계가 없을 때도 아이의 체온 변화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지난해 말 이 옷을 내놓은 유아복 업체에 따르면 신종인플루엔자 때문에 출시 한 달 만에 최초 수량이 완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감온 유아복에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감온 섬유가 들어 있다. 감온 섬유는 일반적인 섬유에 감온색소를 입혀 만든다. 감온색소를 이루는 분자는 주변 온도에 반응해 구조가 바뀐다.
분자구조가 변하면 자연히 분자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들의 분포도 달라진다. 물질의 색은 바로 전자의 분포에 달려 있다. 전자 분포에 따라 분자가 특정 색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분자구조 변화가 곧 변색으로 나타나는 원리다.
감온색소는 사실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맥주병의 온도 지표계나 음료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컵, 색 변화로 온도를 측정하는 디지털 온도계가 흔히 볼 수 있는 예다.
더 가까이는 우리 몸 속에도 감온물질이 있다. 눈의 망막에 있는 단백질인 로돕신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베타카로틴. 빛을 받으면 곧은 직선 구조가 꺾인다. 시신경은 이 변화를 인식해 시각정보를 전달한다.
지금까지 감온색소는 의류에 사용하기 쉽지 않았다. 옷을 빠는 동안 물질이 손상되거나 변색 기능을 잃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냈다.
감온색소를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미세한 캡슐에 싼 다음 섬유에 입히기로 한 것. 바로 이 아이디어가 감온 유아복을 만들어냈다.
화학의 역사에서 감온물질이 처음 나온 때는 1940년대다. 처음엔 중금속물질로 만들어져 주로 공장이나 전자기기에 사용됐다. 약 70년이 흐른 지금은 인체에 해롭지 않은 물질로 만들어져 유아복 매장에도 등장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다. 어떤 때는 반대로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의 간단한 아이디어가 엄마들의 지갑을 열게 해 새로운 시장까지 창출하는 걸 보면 말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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