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하면 떠오르는 것. 올레길, 한라산, 오름, 비취빛 바다….
휴양 도시의 이미지에 걸맞게 온통 정(靜)적인 것 일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기자는 주먹 불끈 쥐고 '천만의 말씀'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
조금만 주의 깊게 제주를 들여다 보면 산악 오토바이로 광활한 초원을 질주하고, 총을 쏘고, 꿩을 쫓는 역동적인 면모가 봄 맞은 개구리 뛰듯 순식간에 다가온다. 그 정점에 대유랜드가 있다.
1907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서울에 최대 폭설이 내린 지난 4일 제주는 좀체 입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항공편 대부분이 결항됐고, 시간상 제주로 가는 배를 탈 수도 없었다. 오후 3시께 잠깐 날씨가 개면서 이륙한 부산행 항공편을 탔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겠다는 욕심에서였다. 다행히 부산의 기상은 양호해 바로 연결편을 이용, 서울을 출발한 지 2시간여 만에 구름 걸린 한라산을 접할 수 있었다. 평소 두 배에 달하는 시간과 비용을 들인 터라 취재 욕심이 앞섰다.
그러나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다시 동 트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서귀포시 상예동 대유랜드로 출발했다.
중문관광단지에서 북쪽 중산간 방면으로 10분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한라산 남서쪽 기슭 목초지가 드넓게 펼쳐졌다.
변공민 이사는 "연간 일본인 6만여명, 중국인 1만여명, 내국인 5만여명 등 13만여명이 이곳을 찾아 수렵, 사격, 사륜구동 오토바이(All-Terrain VehicleㆍATV)를 즐긴다"고 했다. 만 14세 이상이면 모든 레포츠를 즐길 수 있어 가족 레저 체험장으로도 좋다.
직접 잡은 꿩으로 요리까지
포획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일까. 동물을 잡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특히 총기를 이용한 수렵은 집중력을 기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귀족적 레포츠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재미를 위해서 동물을 죽일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식자재로 쓴다. 잡은 꿩은 대유랜드 식당에서 마리당 1만원을 받고 샤브샤브, 구이 등으로 조리해준다. 닭고기에 쫄깃한 식감이 더해진 맛이다.
수렵 면허 없이 처음 총을 잡아보는 사람도 꿩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게 대유랜드의 가장 큰 매력이다. 100만평이나 되는 광활한 대지에 안전을 고려해 수렵 코스를 배치해 혹시라도 다른 사람의 사격에 따른 안전사고 염려가 없고 전문 안전요원이 항상 동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냥개가 꿩을 몰아 우거진 풀 숲 위로 날아오르는 타이밍에 총을 쏜다. 산탄 안에 든 200여개의 쇠구슬이 화망을 구성하는 덕분에 타이밍을 약간 놓치더라도 잡을 확률이 높다. 1인당 보통 1~2마리를 잡는다는 게 직원의 설명이다.
클레이 연습사격으로 시작해 1시간30분 정도 사냥을 하는 비용은 15만5,000원이다. 엽총, 산탄, 복장, 사냥개 대여료와 안내원 동반 요금이 포함된 가격이다. ATV를 타고 이동하면서 꿩을 잡는 결합상품은 16만5,000원이다.
권총에서 산탄총까지 다양한 경험
군대에서 총 좀 만져봤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M-16 혹은 K-1, K-2 정도 쏴본 정도에 불과할 게다. 이곳에서는 HK-33E, SG-551 등 자동소총부터 권총, 산탄총까지 다양한 총기를 경험할 수 있다.
내국인들에게 가장 인기를 얻는 종목은 산탄총을 이용한 클레이 사격. 고정 표적판을 맞추는 소총이나 권총 사격과는 달리 시속 60㎞ 안팎의 속도로 날아가는 클레이를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슴을 울리는 총성과 함께 클레이가 공중에서 박살 나는 순간 어깨를 누르는 스트레스는 자취를 감춘다. 변 이사는 "클레이 사격을 즐기는 여성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기가 없다고 재미까지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소총 사격은 군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바닥을 구르던 고된 훈련이 빠진 게 '소 빠진 찐빵'이라 아쉽다면 배부른 소리라고 욕할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기자가 손에 든 총은 한국과 미국 특수부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할 정도로 명중률이 높은 독일제 HK-33. 길이는 56cm, 무게는 3㎏으로 개머리판을 접은 K-1 소총과 비슷하다.
가늠쇠와 가늠자로 30m 표적판 중심을 겨냥했다. 교관 지시대로 조준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숨을 멈춘 채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빵' 소리와 함께 육중한 진동이 개머리판을 타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파고 들었다. 중심에서 오른쪽 위로 약간 벗어난 9점. 영점은 정확하게 맞는 듯했다.
15발을 순식간에 쏘아댔다. 민방위 훈련도 끝난 나이지만 역시 총 놀이는 재미있었다. 3만5,000원을 내면 총기에 따라 10~15발을 쏠 수 있다.
정해진 길 없어 더욱 즐거운 ATV
한 시간만 차를 타고 나가면 서울 근교에서도 즐길 수 있는 ATV를 제주까지 가서 타느냐고 한다면 '일단 한 번 타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100만평 부지에서 수렵 구역을 제외한 대초원과 숲 속을 자유롭게 달리는 경험은 특별하다.
기자는 이미 몇 차례 ATV를 타본 경험이 있는지라 의기양양하게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한 번 타보라던 교관은 기자가 출발하자 "길을 잃을 수도 있다"면서 뒤를 따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해진 길이 없는 대초원을 10분 정도 질주했다.
이어진 돌밭. 불과 몇 분 전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일순 사라졌다. "좀 달렸더니 춥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고는 핸들을 오던 방향으로 꺾었다.
ATV 코스는 단거리(4.5㎞), 중거리(8㎞), 장거리(12㎞)로 나뉘며 거리가 길수록 험난하다. 소요시간은 단거리 15분에서 중거리 25분, 장거리 40분 내외, 가격은 각각 3만, 5만, 7만원이다.
■ 갈치국·돔베고기 맛 보세요
식도락(食道樂). 향토 음식을 맛보는 것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갈치국과 돔베고기, 고기국수 등으로 제주의 맛을 한껏 느껴볼 일이다.
중문관광단지 교차로에서 안덕 방면으로 향하다 예래입구 교차로 직전에 있는 덤장 중문점(064-738-2550)은 제주향토음식으로 이름이 높다.
제주 청정해역에서 낚시로 잡은 두툼한 은빛 갈치를 넣어 끓인 뽀얀 국물은 기름기가 많으면서도 깔끔하고 고소하다. 제주 방언으로 '배지근한' 맛이다.
늙은 호박과 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뒷맛이 달다. 매운 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몇 점 들어간 풋고추 덕분인지 비린 맛도 전혀 없다. 반찬으로 나오는 돼지고기 산적, 멜(멸치)튀김도 별미다. 8,000원.
돔베고기는 삶은 돼지고기를 돔베(도마) 위에서 썰어 바로 먹는 음식이다. 마늘을 같이 넣고 기름기가 쪽 빠질 정도로 삶아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쫄깃하다. 멸치 육젓에 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한 멜젓이나 양념간장, 된장 등 찍어먹는 소스에 따라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2만원.
중문에서 해안도로로 서귀포시 방면으로 가다 강정사거리 인근에 있는 물질식육식당(064-739-1542)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대표 메뉴는 짬뽕. 해물을 넣지 않고 돼지고기 국물에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끓여낸다. 버섯은 돼지고기의 냄새를 잡아주고 양배추가 달콤한 맛을 더한다. 4,000원.
서민적이면서도 가장 제주적인 맛, 고기국수를 먹고 싶다면 서귀포시내 동문로터리 인근 고향생각(064-763-6009)을 추천할 만하다.
고명으로 나오는 돼지고기 수육에 파김치를 얹어 쫄깃한 면과 함께 먹으면 진정 '배지근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묵직한 돼지고기 육수는 음주로 상처 입은 위장을 달래는데 제격이다.
제주=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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