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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게놈프로젝트 20년] 2회. 게놈에 담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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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게놈프로젝트 20년] 2회. 게놈에 담긴 인생

입력
2010.01.1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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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가 운명을 결정?… 삶의 '길잡이' 일 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있다.

원래의 자질과 행태가 어른이 돼서도 이어진다는 뜻이다. 지난달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성격이나 행동에 유전이 미치는 영향이 일찍부터 나타난다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갈 수 있다

전남대 심리학과 허윤미 교수팀은 2∼9세의 한국인 쌍둥이 아동 894쌍의 어머니에게 전화면접으로 자녀의 성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정서성과 활동성 사교성의 3가지 성격 모두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가 유전적으로 50%만 동일한 이란성에 비해 서로 더 많이 닮았다. 이는 성격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이 학교에 가기 전부터 이미 발현됐음을 뜻한다.

조사 결과를 통계 처리해보니 정서성에선 유전의 영향이 34%, 활동성과 사교성에선 각각 47%와 37%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유전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다.

허 교수는 "소득수준이나 양육방식 같은 객관적 환경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낸 주관적 환경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유전자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가거나 만들어내면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는 한 사람의 인생에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 게놈프로젝트 이후 점점 베일을 벗고 있는 유전자의 기능과 개인별 차이가 주목 받는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2000년대 들어 개인의 유전자를 검사해 성격이나 지능 외모 질병을 예측해주는 병원이나 기업들의 서비스가 많은 관심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생은 여러 유전자의 상호작용

'모험 유전자'나 '호기심 유전자'라고 불리는 DRD4 유전자가 보통보다 길면 새로움을 갈망하고 스릴을 좋아하며 바람을 잘 피운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연구를 근거로 개인의 DRD4 유전자 길이를 측정해 호기심 정도를 예측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예측엔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특정 유형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어떤 특성이 100%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유형을 가진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개인별 몸무게는 천차만별이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적으론 무거운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실제로 새로움을 갈망하는 성격의 원인 중 DRD4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 이하라는 연구도 있다.

유전자 유형이 심신의 특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 희귀한 유전병이다. 한 예로 세포가 퇴화하고 경련과 우울 망상 증상이 나타나는 헌팅턴병은 월프-히르시혼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성격과 지능 외모 질병 등은 수많은 유전자가 몸 속에서 상호작용한 결과로 나타난다. 결국 한 유전자가 운명을 완전히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유전자는 삶의 조언자

그렇다고 유전자의 기능이나 개인별 차이 분석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유전자를 삶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 정도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또 자신의 유전적 성향을 안다면 억지로 이를 거스르는 생활방식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밤엔 비몽사몽이지만 새벽엔 머리가 맑아져 공부가 잘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도 있다. 이른바 종달새족과 올빼미족이다.

두 유형의 유전자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더니 뇌에서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일부 유전자의 형태가 다르다는 연구가 있다. 유전자 유형이 종달새족인데 굳이 밤 늦게까지 책을 붙잡고 앉아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많은 부모는 자녀의 성적이나 행복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 항상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유전자 연구를 보면 부모가 자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 자녀는 이미 자신의 유전적 성향에 맞춰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을지 모른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호기심·비만 유전자 등 14가지 검사는 불법

호기심 유전자(DRD4), 우울증 유전자(5-HTT), 비만 유전자(렙틴). 이들 검사는 불법이다.

2007년 10월 개정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과학적 입증이 불확실한 유전자 검사 14가지를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외 5가지 검사는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아직도 일부 기관이나 회사에서 불법 유전자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한다. 특정 유전자를 분석해 의사처럼 진단을 하거나 심지어 사주 같은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는 것.

피해를 막기 위해 2005년 설립된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은 유전자 검사를 하는 의료기관이나 회사를 실사하고 있다. 실사원으로 활동하는 원자력병원 이진경 진단검사의학과장은 "실사 결과가 80점 미만인 곳은 사실 대단히 미흡한 수준이지만 현재로선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소비자들이 실사 점수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실사 받은 사실만을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심지어 실사를 거부하기도 한다.

유전자 연구를 토대로 한 예측이 상업적 검사로 이어지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지난달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이 주최한 유전자 검사 심포지엄에서 관동대 의대 류현미 교수는 "질병 예측을 위한 유전자 연구가 많아지면서 안전성 유효성 유용성이 증명되기 전에 유전자 검사가 도입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과장은 "유전자 검사에서 나온 '예측'은 확률이나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마치 의사의 '진단'처럼 받아들이진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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