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아침 자녀의 세배를 받을 때면 부모는 지금까지 키운 보람과 함께 앞으로 키울 책임을 느끼게 된다. 올해 아침을 열며 당신은 어떠한 시선으로 자녀를 바라보았는가? 언제까지나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주인공으로 세워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참여자로 인정할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든 자녀를 바라보는 눈높이와 신뢰는 부모와 자녀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유례 드문 과잉보호 사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모의 45%가 자녀를 대학졸업 이후에도 계속해서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부모의 소득과 학력이 높을수록 자녀 보호기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아침부터 자녀를 깨워주고 밤늦게까지 학원 앞에 차를 대기하다 자녀와 귀가하는 부모들이 있다. 자녀의 사회봉사를 대신하고, 입사지원서를 함께 쓰는 부모들도 있다.
한 주부는 아들이 입사시험에서 떨어지자 "우리 애가 왜 떨어졌느냐"며 점수공개를 요구했다. 어느 대기업 사옥 앞 도로는 자녀를 편하게 출퇴근시키려는 고급 승용차로 붐빈다. 자녀 곁을 빙빙 돌면서 보호와 간섭을 멈추지 않는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의 불만족한 부서 발령을 회사에 따지기까지 한다. 자녀의 인생이 부모의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 결과 자녀들은 난처한 일이 생기면 부모부터 찾는다. 모든 일의 결정에 부모의 허락을 받으며 부모 집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 족으로 전락한다.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부모의 연금에 의존하는 'M&F(Mother & Father) 펀드족'도 있다. 부모의 과잉보호 본능은 자녀의 자립 본능을 마비시키고, 어학연수 등 장기적으로 지출되는 사교육비와 생활비 부담은 부모 자신의 노후생활도 보장할 수 없게 되고, 자녀의 2세 출산도 제한하게 된다.
평균 수명이 80세로 연장되면서 세대 간 의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는 사회문제마저 초래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 한국 아동의 가족 내 의사표현 기회와 부모의 자녀의견 존중도가 중국 일본 미국 스웨덴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모가 자녀를 참여의 존재로 존중하는데 인색한 장유유서의 가치관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유교문화를 공유하는 중국과 일본보다 참여권 보장수준이 더 낮다는 사실은 한국 부모의 과잉보호로 인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아동의 참여권 보장은 이미 국제사회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989년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뿐만 아니라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권리를 규정함으로써 아동의 삶의 질을 위한 새 기반을 마련했다. 협약 12조는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 아동에게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09년 개최된 협약 20주년 워크숍에서는 각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아동의 참여가 필요하며, 향후 국제사회의 핵심과제로서 참여권 보장이 강조되었다. 1991년 이 협약에 가입한 우리 정부는 유엔의 권고를 받아들여 최소 고용연령을 15세로 상향 조정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치하여 학대 받은 아동의 개입체계를 갖추었다. 해외 입양을 지양하고 친가정 보호를 위한 가정위탁 지원센터도 설치했다.
부모와 자녀 모두 건강한 삶
이제 우리도 아동의 보호권 보장을 넘어 참여권 보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에게 새해 선물로 자율과 믿음을 주자. 부모는 자녀의 힘을 믿고 밀고 당길 수 있는 미학적 거리를 유지하고, 자녀가 성장할수록 부모의 역할을 줄이자. 부모의 보호 본능이 줄어드는 만큼 자녀의 자립 능력은 늘어난다. 이는 곧 부모와 자녀의 건강한 삶의 질을 보장한다.
이혜원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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