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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3부 이탈리아(上) 최고의 가치를 만드는 명품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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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3부 이탈리아(上) 최고의 가치를 만드는 명품의 비밀

입력
2010.01.1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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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리 재단사 400명 중 절반이 경력 20년 이상"

이탈리아 남부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나폴리(Napoli). 나폴리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북동쪽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브리오니(Brioni), 스테파노리치(Stefano Ricci) 등과 함께 3대 명품 남성복 업체로 손꼽히는 키톤(Kiton)의 생산 공장이 있다. 1층 작업장에 들어서자 공정별로 5~10명 정도씩 모여 앉은 숙련된 나폴리 출신 재단사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요니체 민첸서(47)씨는 "곡선으로 만들어진 돛단배(Barca) 모양의 주머니는 나폴리 남성복만의 특징"이라며 "2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익힌 손끝의 감각을 따라 한치의 오차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담당 책임자인 실베리오 파오네씨는"남성복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 4,000땀 이상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원단의 올 하나하나 섬세한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장인들이 없었다면 명품의 반열에 올라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명품의 가치는 장인들의 손끝에서 나온다. 대량생산이 아닌 수작업만으로 옷을 주문 생산하는 키톤 역시 나폴리에서 최고의 능력을 인정 받는 수석 재단사(Master tailor)들이 원단의 품질에서부터 마무리 작업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12마이크론(0.0012㎜)섬유를 최고의 원단으로 꼽는다.

파오네씨는 "옷을 만들었을 때 구김이 가지 않는 최하단위로, 이 섬유를 흠 없이 다룰 수 있는 섬세함이야말로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기술"이라며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나폴리 출신의 장인들만이 이 작업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연유로 이 지역 재단사 400여명 중 절반 이상은 20년 넘게 한 분야만을 담당해오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분야에 자부심도 대단하다.

25년 경력의 파스킬레 펠리치아(46)씨는 "(기자 옆에 놓여 있는 다리미를 가리키며) 아마도 그게 기자보다 나이를 두 배는 더 먹었을 것"이라며 "여기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는 가늠자, 가위 등 도구들은 길게는 100년 넘게 장인들의 손때가 묻은 것"이라고 얘기했다.

눈에 띄는 것은 공정별로 희끗희끗한 백발의 수석 재단사들 주변에 젊은 재단사들이 섞여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파오네씨는 "대부분의 공정을 20년 이상 경력의 장인들이 전담하고 있지만 이를 잇는 젊은 재단사들을 함께 배치해 기술을 자연스레 전수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대를 뛰어 넘어 전통을 가진 기능을 전수하는 장인들의 문화가 남아 있는 것은 단순히 이들의 능력과 솜씨가 뛰어나서만이 아니라 이들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다. 키톤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파울로 파룸보(54)씨는"장인들은 은퇴후에도 개별 작업실을 차려 자식들에게 기술을 물려주고 있다"며 "그만큼 보수나 대우면에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파오네씨도 "나폴리 재단사들은 명품기업의 스카우트 대상 1호"라며 "고소득의 의사나 변호사와 견주어 뒤지지 않을 만큼의 연봉을 주면서까지 좋은 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찾는 것은 이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했다.

나폴리=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 장인(匠人)의 꿈 이어가는 타마로 형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더 섬세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 되고 싶습니다." (형)

"대학을 간 친구들보다 일찍 능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기회라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동생)

키톤에서 재단 분야의 장인을 꿈꾸며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다니엘레 타마로(27)씨. 그는 2001년 키톤에서 직접 설립한 패션직업학교의 1회 졸업생으로 5년 전부터 이 회사에 취업해 재단일을 하고 있다.

타마로씨의 동생인 살바토레(19)군 역시 키톤의 패션직업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예비 재단사다. 이들은 키톤 뿐 아니라 재단 장인을 꿈꾸는 나폴리의 많은 젊은이들 중 하나로, 이들의 손끝에 명품의 미래가 달려있는 셈이다. 이들 형제의 아버지 역시 30년 동안 키톤에서 패턴(옷본) 작업을 담당하다 얼마 전 은퇴했다.

타마로씨는 "아버지의 땀과 노력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에서 집안의 가업을 이어갈 수 있어 행운"이라며 "더 섬세한 기술을 쌓아서 재단 분야의 장인으로 인정 받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 살바토레군은 "아버지와 형을 보면서 자연스레 재단사의 꿈을 키워 왔다"며 "하루라도 빨리 기술을 익혀 한 분야의 전문성을 쌓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형제는 "자신의 분야를 찾아 일찍부터 전문성을 키우려는 젊은이들과 이런 분위기를 자연스레 만들어주는 사회적 여건이야 말로 오늘날 이탈리아를 명품산업의 강국으로 만든 주춧돌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성환기자

■ 키톤社 부사장 마리아 지오바니 파오네

"분야별로 전문성을 지닌 장인들의 능력을 존중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명품을 만들어 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키톤의 생산라인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있는 마리아 지오바니 파오네 부사장은 이탈리아 명품 산업의 원동력을 이렇게 요약했다.

파오네 부사장은 이러한 이탈리아 산업 구조의 배경에 대해 "이탈리아는 인접한 독일, 프랑스 등 다른 유럽국가들과 다르게 의류, 직물, 신발 등 전통산업 위주의 수공업들이 발달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따라서 개별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기능장인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라 이들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사회적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탈리아는 세계점유율 1위 제품을 300개 넘게 보유하고 있고, 이 중 상당수는 의류 등 수공업 중심 제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수공업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탈리아는 국가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2007년까지 미국과 일본을 앞질러 세계 7위를 기록했으며, 유럽연합(EU) 국가 중 4위의 경제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웃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경쟁력이다.

파오네 부사장은"이탈리아의 명품 산업이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힘은 교육에서 나온다"며 "나폴리에 패션 관련 직업학교들이 많지만 우리도 기능인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해 회사 내에 2001년부터 패션관련 직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세계화'를 외치는 많은 나라들이 새로운 기술만을 배우고 따라잡기 위해 애쓰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며 "각계의 장인들이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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