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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블랙홀 vs 화이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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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블랙홀 vs 화이트홀

입력
2010.01.1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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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유럽 입자물리학연구소(CERN)가 우주탄생 당시의 대폭발(빅뱅)을 재현하는 실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반대가 적지 않았다. 대형 강입자충돌기(LHC) 안에서 양자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시킬 때 인공 블랙홀이 형성돼 지구를 빨아들여 종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은 블랙홀이 생성된다 해도 규모가 극히 작고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소멸돼 어떤 위험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일축하지만 여전히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험은 9일 만에 LHC의 기계적 결함이 발견돼 현재 중단 상태다.

▦ 항성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생성되는 블랙홀은 중력이 무한대로 커져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며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다. 18세기 천체물리학자 슈바르츠쉴트가 처음 개념을 제안했고,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존재 가능성이 뒷받침됐다. 화이트홀도 있다. 블랙홀의 반대개념으로 생겨난 이론상 천체인데, 블랙홀이 집어삼킨 물질이 웜홀이라는 통로를 통해 반대편으로 분출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 자체가 정보를 방출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이 개념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 천체물리학계가 아닌 한국의 정치판에서 때 아닌 블랙홀-화이트홀 논쟁이 일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측은 교육과학 중심의 경제도시가 기업의 투자나 새로운 사업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고 주장한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자기 지역의 혁신도시나 기업도시가 다 망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그러나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 수석은 세종시 수정안은 화이트홀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세종시 투자 유치는 인근의 대덕, 오송, 오산 등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산업들을 선택했고 이로 인해 다른 지역도 생산과 고용증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 세종시에 들어올 첨단산업들은 세종시 수정안이 아니라면 다른 지역 어느 곳엔가 자리를 잡게 되었을 터이다. 이런 점에선 블랙홀 얘기가 전혀 근거 없지는 않다. 장기적으로 주변 지역과의 시너지 효과를 통한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는 화이트홀론은 눈 앞의 실적이 급한 지자체들에겐 먼 얘기다. 세종시 논란은 차기 대선구도와 맞물려 우리사회의 온갖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블랙홀이다. 천문학의 해가 지나갔지만 뒤늦게 국민들에게 천체물리 상식을 늘리게 해주는 효과는 있지 않느냐는 썰렁한 농담이 나올 만도 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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