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천하통일(天下統一)이냐, 은행ㆍ증권ㆍ보험의 삼국지(三國志)냐'
새해 들어 금융권에 소리 없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PB(프라이빗뱅크)를 앞세워 자산 관리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은행의 아성에 증권사와 보험사들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은행으로선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입장이고, 보험과 증권사는 반드시 빼앗아 와야 할 처지여서 PB시장을 둘러싼 운명적 결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서가는 은행권 "복합점포 확충"
국내 자산관리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은행들의 전략은 복합점포 확충이다. 최근 KB금융지주가 지난 6일 서울 강남지역에 개설한 압구정 PB센터가 대표적. 복합점포는 기존 은행 PB센터 안에 증권점포가 운영되는 'BIB(Branch In Branchㆍ점포 속의 점포) 형태'. 은행 업무 뿐 아니라 주식 직접 투자, 채권, 랩어카운트, 사모펀드 등 자산관리 서비스를 총망라한 것으로 금융백화점으로 불린다. KB금융지주는 향후 3년간 서울 수도권에 100개를 개설해 시장 확대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국내은행 중 부유층 고객 마케팅에 탁월한 경쟁력을 확보한 하나은행도 기존 39개의 복합점포 외에 앞으로 인천 청라·송도, 파주 운정, 판교 등 신흥부유층과 중산층이 밀집하게 될 택지개발지구 및 신도시를 중심으로 20여개 지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신한과 우리은행도 기존 PB센터를 복합센터로 리모델링해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을 짜고 있다.
여기에 개인고객 기반이 취약했던 산업은행까지 계열사인 대우증권 영업점을 활용해 은행과 증권 영업을 함께하는 점포를 개설(서울 청담동)에 개설하는 등 은행간 경쟁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맹추격 나선 증권 "서비스 업그레이드"
증권사들의 추격도 매섭다. 그 동안 증권사들은 고액자산가를 상대로, 주식과 펀드 위주의 상품 판매에 치중했던 편. 하지만 올해부터는 회사마다 자산관리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고 새 브랜드까지 내걸며 '맞춤형' 재테크 컨설팅에 나서고 있다.
현대증권은 18일부터 새 자산관리 서비스 브랜드 'QnA'를 출범시킨다. 기존의 자산관리 서비스가 고액 투자자 위주였다면, QnA는 고객저변확대를 위해 문턱을 확 낮춘 것이 특징이다.
앞서 대신증권은 지난 11일부터 주식ㆍ펀드 투자고객에게 맞춤형 투자전략을 제시하는 '금융주치의'서비스를 본격 도입했다. 투자상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애프터서비스'에 신경을 쓴다는 것. 예컨대 시황 급변시엔 금융주치의가 먼저 고객에게 연락해 위험에 대처하도록 전략을 짜준다는 것이다.
작년 9월엔 미래에셋증권이 펀드, 퇴직연금, 자산관리계좌(CMA), 랩(Wrap), 신탁 등 다양한 투자상품을 하나의 주거래 계좌로 통합 관리받는 '미래에셋 어카운트'를 선보였고, 삼성증권도 자산관리의 대중화를 표방한 '팝(POP)'브랜드로 맞불을 놓았다.
대우증권도 지난달 '스토리(STORY)'브랜드를 내걸고 고객의 투자성향과 자산규모에 맞춰 투자 현황 및 자산 구성비중 등을 점검하고 전략을 제안하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개시했다.
특히 25일부터 '펀드판매사 이동제'가 시행되면 자산관리 서비스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 '휴대폰 번호이동제'처럼 펀드가입자가 펀드 상품을 환매하지 않고도 다른 판매회사로 갈아탈 수 있게 되면서, 증권사들선 기존 고객을 지키고 새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묘책이 절실해졌다.
삼성증권 김상문 투자컨설팅팀 과장은 "이제 투자상품 판매는 물론 애프터서비스까지 책임지는 자산관리 컨설팅의 역량에 따라, 투자자들의 금융기관 선택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파고드는 보험 "감성 마케팅"
FP(재무설계사)를 앞세운 보험사의 약진도 눈에 띈다. 이들은 설계사 특유의 장점을 살려, 단순 투자상담을 넘어 인생자문까지 하는 감성 마케팅에 초점을 두고 있다.
2002년부터 VVIP 고객 서비스를 시작한 삼성생명은 이 같은 전략을 앞세워 평균 연봉 2억5,000만원 이상,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주고객층으로 확보했다. 이 기준은 은행ㆍ증권보다 높은 것. 대한생명과 교보생명도 전국 7개 센터를 운영하며 고액 자산가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은행에 이어 증권과 보험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그만큼 국내 자산관리 시장의 미래가 밝기 때문. 메릴린치(Merrill Lynch)에 따르면 국내에서 100만달러 이상의 거액자산가가 지난해 13만명을 넘었고, 향후 10년간 매년 10% 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만큼 시장이 계속 커지고, 전문적 자산관리 수요도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 펀드를 환매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펀드 이동제가 실시되는데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30조원이 넘는 토지보상금이 쏟아지는 등 변수가 많아 자산관리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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