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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세종시는 정치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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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세종시는 정치문제다

입력
2010.01.15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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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초 편집국장들과 만났을 때였다. 여러 웅장한 포부를 펼치는 와중에 정치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물론 치열하게 맞섰던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의 답변은 단호했다. "이제 내 경쟁자는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 경쟁국 지도자들이다. 대통령이 됐는데 국내에 더 이상 무슨 정치적 경쟁자가 있겠나?" 마침내 정상에 선 자신감과 함께 숱한 상흔을 안긴 지긋지긋한 정치판에서 빠져 나왔다는 홀가분함, 그게 MB에게서 받은 느낌이었다.

MB의 정치인식부터 바꿔야

널리 알려진 발언을 복기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그 느낌이 이후 MB의 국가운영 스타일로 고스란히 현실화한 때문이다. 그는 철저하게 국내정치와는 거리를 뒀다. 해외 국가지도자들과는 거침없이 적극적으로 친분을 나누면서도 국내 정치지도자들과의 대면은 마지못해 하는 모양새가 역력했다. 그것도 간신히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 같으면 청와대의 핵심이자 실세소리를 들었을 정무수석직은 한동안 한직처럼 보였다. 현 박형준 수석도 사실 정책 쪽 능력이 더 돋보이는 인물이다.

현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에서 대체로 정치가 생략되고, 쟁점 법안들이 자주 강행 처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의 세종시 수정안 역시 MB의 정서와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 원안의 9부2처2청까지는 아니어도, 행정비효율 정도가 상대적으로 작을 몇 부처는 구색으로라도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깨끗이 무산됐다.

정치에 대한 MB의 인식을 가늠케 하는 사례는 또 있다. 그는 엊그제 시ㆍ도지사 간담회에서 "세종시 문제는 정치적 현안이 아니므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와 정책을 분리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는 정치를 정당과 정파, 정치인 간에 부질없는 이해를 놓고 다투는 행태로만 국한해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현대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경제, 외교, 교육 등 어느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사안이란 없다. 이해와 배경과 계산이 저마다 다른 국민 전체를 100%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정책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최대이익에 근접한 정책을 뽑아내기 위해 생각과 이해를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세종시도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정치문제다. 이걸 인식하지 못하고 정책과 정치를 분리하는 시각에서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어쨌든 세종시 앞날은 더 불투명해졌다. 관련 법률의 통과가 난망이니 빈 땅에 삽만 꽂고 하릴없이 기다릴 도리밖에는 없다. 그 동안 정당ㆍ정파 간 싸움과 여론전은 계속돼 시급한 국가현안들마저 덮을 것이다.

입주를 약속한 기업들의 속내도 그다지 편치는 않을 것이다. 조건이 워낙 좋은 데다 현 정부를 돕는 생색도 낼 수 있어 가담했지만 막상 여론이 기업에 어떤 효과로 작용할지, 또 향후 대권구도를 둘러싼 상황도 어떻게 변할지 예측 불가인 때문이다. 덥석 입에 문 떡이 내일엔 자칫 배탈의 원인이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MB측으로서는 시간을 끄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본디 여론이란 게 처음엔 불에 덴 듯 요란하다가도 제 일이 아니면 점차 심드렁해지기 마련이므로.

마지막 조정과 타협을 기대

정치는 필요악이다. 귀찮고 번거로워도 정치를 외면해선 도리어 정치에 발목 잡혀 소신과 포부를 제대로 펼 수 없게 된다.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을 따지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이전부처의 폭과 대상을 조율하는 정치능력이다. 아예 협상의 여지를 없앤 듯 보이는 수정안이 사실은 협상을 전제한 고도의 전략적 고려의 산물이기를 기대한다.

툭 던져놓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국가의 최고'정치지도자'가 취할 방식은 아니다.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타협과 포용의 전범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국가 백년대계일 수 있다. 반대편의 정치지도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주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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