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이라 하면,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의 어느 장면들이나 배경음악이었던 비치 보이스의 '코코모'가 떠오른다. 술과 여러 종류의 음료를 섞은 혼합주라는 뜻의 칵테일은 우리 영화나 드라마 속에 '서양풍'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종종 이용되곤 했다. '마티니', '맨해튼', '싱가폴 슬링', '솔티 독', '블랙 러시안' 등 칵테일 이름들은 하나같이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정말 유서 깊은 칵테일들은 그 레시피의 출발이 3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탕같이 달콤한 색상의 칵테일은 생각보다 '뼈대'있는 주종인 것이다.
칵테일이 가끔씩 생각날 때가 있다. 술을 막상 마시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귀가하기 미진할 때. 낯선 도시에 출장을 가서 혼자 한 잔 생각이 날 때. 오래 전 헤어진 애인과 우연히 만났을 때. 마음 좋은 직장 상사가 우울해 보일 때. "술 마시자"는 말보다 "칵테일 한 잔!"이 어울린다.
칵테일은 혼합주지만, 만드는 방법에 기본적인 룰이 있다. '베이스'를 깔아주는 술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이 태어난다. 진, 럼, 보드카, 위스키 같은 독주가 일단 바닥에 깔리면서 칵테일의 전반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깔끔할 것인지, 진할 것인지, 드라이할 것인지, 달짝지근할 것인지가 베이스로 깔리는 주종에서 이미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에 과즙이나 향초, 허브 등이 섞인 술이 어울리며 양념 역할을 한다. 고기육수, 다시마 멸치 육수, 닭 국물 등의 육수를 먼저 정하고 거기에 간장, 고추장, 된장으로 간을 맞추는 국이나 찌개 끓이는 과정과 닮았다. 베이스 술에 양념 술을 섞으면 얼음을 넣은 잔에 그냥 부을지, 얼음과 같이 흔들어 온도를 낮춘 다음 잔에는 얼음 없이 따라낼 지, 상온인 채로 그냥 마시게 할지는 칵테일 마시는데 소요되는 대강의 시간이나 맛에 의해 결정되겠다. 레몬 조각을 띄울지, 네모진 각설탕이나 올리브를 넣을 지도 마지막 손질에 해당된다.
이렇게 따지면 칵테일은 단순히 오묘한 빛깔의 가벼운 음료가 아닌, 예술이다. 100년 넘게 만들고 마셔온 칵테일이라도 만드는 바텐더의 취향과 역량에 따라 완성도는 천차만별. 그래서 뉴욕이나 파리나 동경에 가면, 이름난 바텐더들이 '스타급' 대접을 받는 칵테일바들이 있다. 뉴욕 다운타운에서 유명한 어느 바텐더가 스물 몇 살이고, 동경 긴자에서 30년 넘게 같은 바에 근무하는 바텐더는 초로의 나이다. 국적과 세대가 달라도 '한잔의 예술'을 만든다는 자부심은 다 비슷하다.
서울에도 분명 이들 못지않은 실력의 바텐더들이 있을 것인데, 칵테일이 요란한 퍼포먼스나 쇼맨십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점잖고 은은한 칵테일바들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한민국에 잠자고 있는 천재 바텐더들을 다시 깨울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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