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쓴 논문이 책자로 나왔어요."
11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에 자리한 계성여고. 1학년 김서영(17ㆍ1년)양은 최근발간된 <계성여고 탐구논문집> 을 가리키며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계성여고>
웬만한 교수들의 작업 기간과 맞먹는 8개월여의 공을 들여 완성한 김양의 논문 주제는 '한국과 미국 고교생들의 교육 환경 비교'이다.
획일화된 교육 환경 속에서 '학업' 성적이 우선시되는 한국과 스스로 관심분야를 찾아 활동 학습에 매진하는 미국 교육을 입체적으로 비교하는 논문이었다.
김 양은 논문 준비를 위해 지난해 여름방학 때 학교가 주관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참여, 1개월 동안 미국 학교들을 둘러보는 강행군을 했다.
미국 고교를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갖긴 했으나, 정작 객관적인 데이터 등을 이용해 논문으로 옮기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인터넷 관련 자료는 물론 전문 서적까지 샅샅이 뒤졌다. 밤을 새는 일도 잦았음은 물론이다.
"공부를 그렇게 좀 해봐라"는 어머니의 애먼 핀잔도 개의치 않았다. 공을 들여 만들었지만 지난해 가을 가완성된 논문은 빈틈투성이였다. 멘토로 참여한 교사의 도움을 받아 수정과 보완 작업이 계속됐다. 학교 시험기간 중에도 논문 보완은 중단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드디어 김양의 논문이 수록된 탐구논문집 1호가 발간됐고, 같은 달 24일에는 방학식을 겸해 논문발표회를 가졌다. 교사와 친구들이 쏟아낸 "대단하다"는 칭찬에 비로소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김양은 "논문을 쓰면서 과중한 입시부담만 없다면 한국 학생들도 적성을 찾아 공부에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계성여고생들이 생생한 체험이 바탕이 된 탐구논문집을 낸 배경에는 다분히 현실적인 학교 측의 판단이 작용했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기회를 갖게 하고, 입학사정관제 시행에 대비해 이른바 '스펙'을 쌓는데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다.
개교 65년만에 처음 시도된 탐구논문집 발간 작업은 분야별로 담당 교사를 두고 1, 2학년 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스스로 논문을 써보도록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학교 측은 지난해 5월 논문집 발간 프로그램 공고를 낸 뒤 지원을 받아 '열의'와 '용기'로 똘똘 뭉쳐진 학생들을 위주로 15개 팀 60여 명을 뽑았다.
6월까지 학생들 스스로 탐구 주제를 정하고 세부 계획을 세우도록 했고, 사전조사에 이어 10월까지본격적인 탐구 활동이 진행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12월 팀별로 최종 논문 작성에 들어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일정이 빡빡하고 쉽지 않은 탐구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포기한 팀은 없었다.
탐구논문집에는 '애기똥풀 염색에서 최적의 발색조건 탐구', '충렬왕 원 간섭기 때의 고려 여성 복식에 대한 고찰'등 비교적 전문적인 분야에서부터 '2009년 계성여고 학생들의 학습 요소와 학업성취도간 상관관계', '관광특구로서 명동 탐구' 등 생활 주변에서 찾은 주제까지 29편이 실렸다.
학교 측은 프로그램 착수 당시 학생들의 논문 작성에 반신반의했다. 한 교사는"사실 우려가 더 컸었지만 학생들이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 성과를 냈다"고 칭찬했다.
논문 평가에 참여했던 서울 A대학 연구원은 "일부 논문은 전문가 수준 이상"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논문집에 실린 주하나(18ㆍ2년)양의 '지렁이퇴비가 방울토마토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화여대가 주관하는 '중고생 과학 논문 멘토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신점철 교장은 "암기식, 주입식 교육 환경에 매몰된 학생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탐구논문집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자기 성찰과 발전의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평소 경영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이수진(17ㆍ1년)양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준비하면서 진로를 더욱 분명히 할 수 있었다"며 "대학의 경영학과에 진학해 졸업 뒤 기업의 공익활동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선아(17ㆍ1년)양은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게 돼 흥미가 배가 됐다"며 "기회가 된다면 관심 분야인 '광고심리'를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고, 사회에 나가서도 유사한 일에 종사할 생각"이라고 활짝 웃었다.
박철현 기자 karam@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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