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도 환율이지만 원자재가와 유가의 급등도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급상승하고 있다. 특히 국제 유가가 연초부터 80달러를 넘어서는 등 예상보다 큰 폭으로 오르고 있어 경영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판이다."(화학 업종 A대표)
"올해 환율은 일단 1,050원을 기준으로 경영 계획을 세워둔 상태여서 그나마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원자재가마저 계속 상승하면 적자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자동차 업계 B사장)
한국일보 경제부와 산업부가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올해 경제 전망 설문 과정에서 확인한 CEO들의 속내이다.
4~9일 진행된 이번 설문에서 대기업 CEO 77명은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소(복수 응답)로 '전반적인 경기 불확실성'(39.5%)과 '환율, 국제 유가 및 원자재가 불안'(38.2%)을 꼽았다.
자본가와 경영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항상 불확실성이란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환율과 원자재의 불안이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복병이 될 것으로 내다 본 것이다.
지난해 가장 큰 효자 환율, 거침없는 내리막길
실제로 환율은 지난 연말부터 가파르게 내리막길이다. 지난달 23일 1,183.60원을 기록한 뒤 지난달 29일 단 하루를 제외하곤 계속 하락한 것. 11일 1,119원대까지 추락한 환율이 12일 1,122원대로 소폭 오르긴 했지만, 지난해 연 평균 환율 1,276.35원과 비교하면 이미 11.4%나 하락한 것이다.
그 만큼 원화가 강세인 것인데, 이는 해외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우리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엔 악재일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올해 전자 정보기술(IT)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수출 주력 산업의 전망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심상찮다. 3대 국제 유가는 이미 배럴당 80달러선을 돌파했다. 12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1일 중동산 두바이유는 배럴당 81.35달러로, 지난 7일 2008년 10월6일 이후 1년3개월만에 처음으로 80달러대에 진입한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뉴욕 상업거래소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11일 82.23달러, 런던 석유거래소의 북해산 브렌트유도 80.1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달러화 약세로 석유 시장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고, 휘발유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겹치면서 연초부터 유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한국석유공사 설명이다.
원자재가 급등, 해외돌발변수 우려
구리와 알루미늄등 국제 원자재 가격도 오름세가 이어지긴 마찬가지이다. 세계 원자재시장의 대표적인 지표로 활용되는 런던금속거래소(LME) 비철금속가격지수는 최근 톤당 7,000달러 후반대로 한달사이 10% 가까이 뛰었다. 특히 구리의 경우는 1년간 150% 가까이 올라 일부 품귀현상까지 보일 정도이고, 2배 이상 오른 비철금속들도 적지 않다.
CEO들이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협으로 불확실성과 환율 및 원자재가 불안에 이어 '해외돌발변수'를 지적한 것도 주목된다.
경기부양정책으로 곳간이 빈 일부 나라들이 부도에 처할 경우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우리 경제도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게 CEO들의 우려였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증가 예상 61.8%
한편 이번 설문에서 올해 국내 기업들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과 관련, 두 가지가 모두 증가할 것이라는 답변이 61.8%로, '매출 증가, 이익 감소'라고 답한 31.6%보다 높게 나타난 것. '매출 감소, 이익 증가'란 대답과 '매출, 이익 모두 감소'란 대답은 각각 2.6%에 그쳤다.
투자도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국내 기업들의 투자가 어떨 것으로 보느냐는 설문에 69.7%가 '약간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또 '크게 늘어날 것이다'는 대답도 10.5%를 기록했다. '작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은 18.4%, '약간 줄어들 것이다'는 1.3%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일자리 여건도 다소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이 54.0%로 가장 많았으나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40.8%)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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