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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 보기] <17> 화순대곡리 출토 청동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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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 보기] <17> 화순대곡리 출토 청동 유물

입력
2010.01.1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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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묻혀있다 우연히 발견되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는 경우도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서 무더기로 출토된 청동유물이다. 바로 국보 제143호로 지정된 청동일괄유물로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청동거울인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2점, 좁은 청동단검인 세형동검(靑銅劍)3점, 방울 8개를 한 몸체에 만든 청동팔두령(靑銅八頭鈴) 2점, 방울이 대칭으로 2개가 마련된 청동쌍두령(靑銅雙頭鈴) 2점, 작은 청동도끼(靑銅斧) 1점등 모두 11점이다.

1971년 12월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실(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근무하던 필자는 그 해 마지막 전남지역의 문화재지표 현황조사를 마치고 12월 20일 전남도청 문화공보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때 이 청동일괄유물이 국립박물관에 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청동유물이 많은 데 놀랐던 나는 유물이 입수된 경위가 떠돌이 엿장수가 신고한 것이라는 설명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즉시 문화재관리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게 하는 한 편 매장문화재 발견신고 절차를 밟게 하고 서울 연구실로 돌아왔다.

워낙 중요한 일괄유물이기 때문에 즉각 현장 조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국립박물관의 윤무병 수석학예관과 함께 김포공항에서 광주공항으로 날아갔다. 발견된 곳은 대곡리 구재천(具在天 67세)씨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발견자의 증언을 통해 비가 오면 초가의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바로 흘러나가지 않아 배수로 작업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이 유물이 무슨 쇠붙이인가 하고 함께 파낸 돌에 두드려 보기로 했으나 부러지지도 않아 그대로 두었다가 엿장수와 엿 몇 가락과 교환했던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름 모를 떠돌이 엿장수가 뭔가 오랜 유물이라고 생각되어 바로 전남도청 문화공보실에 신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하루 만에 유물이 출토된 현장을 되파게 해서 무덤의 구조를 확인하고 아울러 바닥에 깔려있는 목판의 일부를 연대측정을 위한 시료로 채취하고 당일로 작업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출토지가 분명하게 확인되었고 무덤의 구조도 밝혀지게 되어 이듬해 3월 바로 국보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발견 37년 후인 2008년 다시 2점의 세형동검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전남도에서 이 일대를 정비하는 과정에 이 유구의 정식 발굴조사를 국립광주박물관 주관으로 실시하여 찾아낸 것이다. 최초 확인 당시 완벽하게 조사하지 못한 결과여서 변명의 여지없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발견자인 구재천씨가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매장된 문화재가 발견되면 신고를 통해 전문가의 감정을 받아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신고기간을 넘겨 발견자나 신고자 모두 한 푼의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국보로 지정된 청동일괄유물의 값은 상상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법에는 무지로 인한 잘못은 판결에 있어서 참작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재보호법은 무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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