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동시는 너무 의미에 치중해서 아이들을 억압한다고 느꼈어요. 아이들이 동시라는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았습니다."
최승호(56) 시인은 12일 열린 <말놀이 동시집> (비룡소 발행) 5권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쓰기를 시도했다. 감히 동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확장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3월 이 시리즈의 첫 권인 '모음' 편을 발표한 뒤 '동물' '자음' '비유' '리듬'에 관한 단행본을 차례로 냈다.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는 동시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약 12만 부가 판매됐다. 말놀이> 말놀이>
최씨는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뒤 <대설주의보> <그로테스크>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등의 시집을 냈으며 오늘의작가상, 김수영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받은 중견 시인이다.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아무것도> 그로테스크> 대설주의보>
그가 동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7년 강원 사북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부터. 당시 그는 1년에 4차례 아이들에게 동시를 짓게 하고 그 결과물을 모아 시집을 엮었다. 아이들과 연 조촐한 출판기념회는 시 낭송과 노래, 연극을 곁들인 잔치였다. 그는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감각을 익혔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내기에 교과 내용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고 했다.
그는 우선 한글 운문 동시를 기획했다. "프랑스어, 영어권은 두운과 각운을 맞추는 운문시에서 시가 시작됩니다. 한글은 소리글자인데 운문시의 전통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라미 라미/ 맨드라미/ 라미 라미/ 쓰르라미/ 맨드라미 지고/ 귀뚜라미 우네/ 가을이라고/ 가을이 왔다고 우네/ 라미 라미/ 동그라미/ 동그란/ 보름달'(1권 게재 '귀뚜라미' 전문)와 같은 시가 탄생했다. 2권에 실린 '도롱뇽'은 '도롱뇽 노래를 만들었어요/ 도레미파솔라시도/ 들어 보세요// 도롱뇽/ 레롱뇽/ 미롱뇽/ 파롱뇽/ 솔롱뇽/ 라롱뇽/ 시롱뇽/ 도롱뇽'으로 이어진다.
문자의 형태를 가지고 표현하는 형태시에도 도전했다. 가령 4권에 수록된 '뿔'은 뿔이라는 글자 위로 자음 'ㅂ'을 사슴 뿔 모양으로 이어 붙인 형태로 표현했다. 올해 초 나온 5권은 '리듬'을 주제로 음악성을 살렸다. 노래하는 듯한 '개개개/ 개개개/ 개개비 운다/ 개개개/ 개개개/ 그래 나 개야/ 술 취한 개야/ 내 이름 그만 불러'('개개비와 개' 전문)는 술 취한 개와 전봇대에 앉은 새 개개비를 그린 삽화와 함께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첫 권부터 함께 작업한 윤정주씨의 그림이 시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면서 이 책의 숨겨진 조력자들을 소개했다. "첫 권을 쓸 때 딸아이가 3학년이었는데, 아이에게 보여준 뒤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나 표현은 과감히 버렸어요. 편집자는 그렇게 쓴 시 중에서 절반만 골라 책에 실었지요."
최씨는 어른들에게 "시에서 주제나 상징을 찾아야 했던 부모 세대의 교육 방식에서 해방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음식은 요리사의 것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것이며,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주고 스스로 안목을 갖게 하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말놀이 동시는 이것으로 끝"이라며 "올해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내용의 내 시집을 내겠다"고 밝혔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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